[스포티비뉴스=대구, 배정호 기자] 하늘은 맑았다. 습관은 무서웠다. 이승엽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구장에 일찍 도착했다.

한 노년의 팬이 이승엽의 차를 알아보고 불러세웠다. 

“정말로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이승엽이 차에서 내렸다. 기분이 좋지 못했다. 정말로 좋아하는 야구는 오늘로 끝이다. 


“어제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근데 오늘은 다르다.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뭔가 뒤숭숭하고 씁쓸하다. 기분이 안좋다.” 

이승엽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서 그리고 대만에서 기자들이 왔다. 이승엽은 약 30분간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봤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끝났다. 취재진이 박수를 쳤다. 

라커룸으로 들어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승엽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옷이었다. 경기 시작 전 이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만석을 채웠다. 이승엽의 마지막 선수 생활 모습을 담기 위해 팬들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행사 대기실에선 이승엽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고생했던 아내와 두 아들이 경기 전 시구자로 나섰다. 

▲ [스포티비뉴스=대구, 한희재 기자]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이승엽 선수의 가족사진

이승엽의 아내 이송정씨는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오니까 긴장된다. 잘 던져보겠다”며 웃었다. 첫째 아들 은혁은 “아빠가 은퇴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이승엽을 보자마자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승엽과 후배들이 모였다. 이승엽이 말을 꺼냈다. 

“오늘은 진짜 이기고 싶다. 열심히 하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라이온즈 파크 대부분의 팬이 일어났다. 이승엽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이승엽은 역시 이승엽이었다. 한현희의 속구를 그대로 받아쳐 담장을 넘겨 버렸다. 

응원가는 더욱 커졌다. 이승엽은 차분했다. 

분명 경기 전에는 “안타와 홈런에 욕심이 없다. 부상없이 그저 잘 끝냈으면 좋겠다” 고 했다. 하지만 경기에 들어서자 왜 이승엽인지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었다. 

▲ [스포티비뉴스=대구, 한희재 기자] 이승엽이 연타석 홈런을 친 뒤 동료와 기뻐하고 있다.

두번째 타석에서도 연타석 홈런이 터졌다. 잠시 라이온즈 파크가 고요해졌다. 더그아웃은 더 그랬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우규민은 “나 지금 소름 돋았어”라고 외쳤다. 

9회말 이승엽이 마지막으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투수 장필준이 흔들렸다. 이승엽은 마운드로 다가가 후배의 긴장을 풀었다.

장필준의 손을 떠난 볼이 미트에 꽂혔다. 삼진이었다. 이승엽이 환호했다. 자신의 선수 시절 마지막 경기가 승리로 장식됐다. 

이승엽은 잠시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나와 은퇴식을 준비했다. 

이승엽의 역사가 담긴 영상이 전광판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엽의 눈가가 서서히 촉촉해졌다. 이승엽은 이수빈 구단주를 보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찍었던 영상이 모든 이의 가슴을 울렸다. 

“그동안 어머니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어머니가 뒷바라지하느라 본인의 건강을 챙기지 못하셨다. 내가 더 잘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하다는 게 정말 큰 한인 것 같다.” 

이승엽이 마이크를 잡았다. 

“10월 3일 여러분들 앞에서 야구 선수 이승엽이 은퇴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이승엽이 유니폼을 벗었다. 23년간의 야구 인생의 마침표였다. 

“야구는 저에게 사랑입니다. 야구가 없었더라면 이승엽의 이름 석 자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구를 시작할 때 부터 삼성라이온즈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지금 그 꿈을 이뤘습니다. 여러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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