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핸드볼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 광장동, 박대현 기자
[스포티비뉴스=광장동, 박대현 기자] 다시 '봄날'을 꿈꾼다. 과거 국제무대를 호령했던 한국 핸드볼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9 핸드볼 저변 확대 사업 지도자 강습회가 11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렸다.

김경태 핸드볼아카데미 원장 인사말로 첫발을 뗀 강습회는 최정석 대한핸드볼협회 이사의 사업 소개로 닻을 올렸다. 최 이사는 발상의 전환을 입에 담았다.

위기다. 소년체전 폐지와 해마다 주는 핸드볼 등록 인구는 한국 핸드볼 부활에 빨간불을 비췄다. 올해 역대 처음으로 1600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국가 정책도 방점을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옮기는 중이다. 지원 온도와 금액이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크다.

최 이사는 탈태(脫態)를 말했다. 필요하다면 형태를 바꿔서라도 팬들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3 종목을 대중화한 농구나 8대8, 풋살 등을 시도한 축구가 좋은 예라고 했다. 이웃 구기 종목이 옷을 갈아입고 새 동력을 확보한 선택을 본뜰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이사는 "3대3 농구가 아시안 게임,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는가. 여러 시도가 현재를 만든다. 핸드볼계도 (전방위적으로) 움직일 시점"이라고 힘줘 말했다.

탄력적 대응을 제안했다. 국가 정책 변화에도 민감한 더듬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학교 체육에서 실내 종목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미세먼지 등 나빠진 외부 환경 탓이다. 핸드볼이 이 틈을 파고든다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코트 규격을 줄여서라도 '파도'에 올라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어필했다. 이미 농구와 배구, 탁구 등은 경주에 나섰다. 핸드볼도 발맞춰 앞을 다퉈야 한다고 했다.

▲ 한국 핸드볼계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지난달 10일에도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심판 기술위원 강습회가 열렸다. ⓒ 스포티비뉴스 임창만 기자
스포츠안전재단 이재영 강사가 오후 세션 첫 타자로 섰다.

주먹쌓기 게임으로 화두를 던졌다. 2인 1조로 짝을 지은 뒤 강사 구호에 맞춰 주먹을 움직이는 게임. 강사가 "올려" 하면 맨 위 주먹을 바닥으로 내리고 "내려" 하면 순서를 바꿔 맨 아래 주먹을 꼭대기로 올리는 식이었다.

헷갈렸다. 규칙은 단순한데 실제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생각만큼 주먹이 탁탁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강사는 "마음처럼 잘 안 되지요(웃음). (룰과 지식, 옳은 행동을) 아는 것과 앎을 실천하는 건 별개 문제 같다"며 체육계가 지닌 안이한 안전 의식을 부드럽게 꼬집었다.

영화로 주의를 환기했다. 어느 여자 체조 선수단 훈련 일상을 담은 영화였다.

서늘했다. 배경음악이나 별 영화적 장치가 없는데도 영상엔 차가운 긴장감이 서렸다. 

훈련장 곳곳에 사고 위험이 도사렸다. 뜀틀에 박힌 나사, 환풍기에서 흐르는 물, 피복이 벗겨진 전선, 이음새가 헐거운 이단 평행봉 등이 쭉 잡히는데 조마조마했다.

3~4분가량 영상은 매너리즘이 지닌 위험성을 납득시켰다. 

여기에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을 언급했다. 끓는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와 목숨을 건지지만, 물을 서서히 데우는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자기 몸이 삶아질 때까지 온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험 요인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 눈앞 위험을 깨닫지 못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영화 장면을 보고 이론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쉬웠다.

사소한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인데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오후 세션 두 번째 주자는 대한체육회 신현경 강사였다. 신 강사는 스포츠 4대악 교육을 맡았다. 특히 성폭력에 집중해 강의했다.

"인권은 누군가 권리가 아닌 모든 이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운을 뗀 그는 스포츠 폭력이 지닌 특수한 성질을 구술했다.

체육계 폭력은 정신력 강화와 경기력 향상, 기강 확립 등 이유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폭력을 통해 더 열심히 운동한다는 잘못된 지도자들 생각이 숙주 노릇을 한다고 덧붙였다. 폭력이 학습·재생산되고 일상화하는 토대로 자리한다고 짚었다. 악순환 고리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갖는 무기력이다. 위계가 강한 운동부 문화에 길들여 지면서 폭력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힘을 잃어버린다. 특히 운동부 특유의 집단성과 폐쇄성이 이 같은 경향을 부채질한다고 힘줘 말했다.

영국 언어 철학자 존 오스틴(1890~1961) 말을 인용했다. "거친 말은 주먹을 날리는 행위와 같다." 신 강사는 강습회에 참여한 여러 지도자에게 폭력을 정의하는 범위를 조금 더 넓혀 줄 것을 주문했다.

오성옥 한국 여자 청소년 국가 대표 감독이 마지막 강연자로 나섰다. 오 감독은 한국 핸드볼 영광의 순간을 영상으로 쭉 보여 줬다.

▲ 실력과 외모를 두루 갖춘 '총알탄 윙어' 강전구(두산) ⓒ 스포티비뉴스 곽혜미 기자

이어 핸드볼 저변 확대를 위한 전략을 언급했다. 방향을 귀띔했다.

최근 대한핸드볼협회 행보를 소개했다. '스타와 함께하는 핸드볼학교' '여학생 핸드볼 교실' '대학교 지도자 파견'을 설명했다. 배우는 이에게 전문성이 확보된 가르침을, 지도자에겐 선수 은퇴 뒤 새 활로라는 두 가지 노림수가 엿보였다. 묘수였다. 

'핸드볼 스타 발굴'이란 문장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말 한국 선수로는 8년 만에 유럽 무대에 진출한 류은희(부산시설공단)나 외모 실력을 두루 갖춘 강전구(두산) 부크 라조비치(SK 호크스) 등이 떠올랐다.

핸드볼학교는 2015년 5월 1일 개교했다. 성장세가 탄탄하다. 지금까지 약 500명에 이르는 회원을 모집했다. 본교(송파구 방이동)와 노원 등 2개 캠퍼스로 운용할 정도. 올해부턴 핸드볼아카데미와 연계해 지도자 풀 확장에도 공을 들인다.

오 감독은 "핸드볼학교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핸드볼) 보급이 원활한 환경 조성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장 지도자에게 안성맞춤인 팁도 건넸다. 다양한 훈련법을 차례차례 소개했다.

첫머리에 유럽에서 유행하는 워밍업 프로그램을 담았다. 꼬리잡기와 상대 발 밟기, 앉은 상태에서 서로 넘어뜨리기, 등을 맞댄 채 밀기 등 흥미로우면서 다채로운 몸풀기 방법을 소개했다. 호응이 컸다.

기습 질문. 오 감독이 청중에게 "핸드볼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스텝" "순발력" "퍼스트 캐치" 등 다양한 답이 나왔다.

오 감독이 꼽은 건 '볼 콘트롤'이었다.

"유럽은 명확하다. 핸드볼을 처음 접하는 학생에게 볼 콘트롤을 가장 강조한다.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볼 콘트롤을) 가장 뿌리가 되는 기본기로 여긴다."

앳되 보이는 유럽 여자 청소년 선수들이 화면에 떴다. 아기자기한 연습 장면이 스크린을 채웠다. 이들은 테니스 공과 축구공, 핸드볼 공을 두루 활용해 볼 핸들링 연습을 했다.

NBA(미국프로농구) 최고 포인트가드 스테픈 커리 드리블 연습이 떠올랐다. 한국 축구 대들보 손흥민 인터뷰도 머리에 스쳤다. "아버지에게 드리블로 수비수 1~2명은 따돌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플레이어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공격이든 수비든 길게는 20년 넘게 만질 공을 완벽하게 다루는 능력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텝 훈련 영상도 인상적이었다. 시쳇말로 '힙'했다. 힙합 댄스를 연상시키는 훈련으로 집중력을 높인 게 인상적이었다. 리듬감을 높임으로써 탄력 있는 움직임을 유도하고 부상 예방에도 효과가 있어 보였다. 

이밖에도 오 감독은 패스, 슈팅, 수비 훈련 영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현역 지도자가 현장으로 돌아가 시도해 볼만한 것들이었다.

'요즘 애들' 생각을 들으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10인에 달하는 유망주 인터뷰를 쭉 나열해 세대간 거리감을 줄였다. 일신여고 신민희와 삼척시청 김윤지, 성서초등학교 김선우 등이 덤덤히 자기 생각을 꺼내보였다.

155cm 키가 고민이라는 신민희는 "작은 선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꼭 신인 드래프트에서 호명돼 실업 팀에서 뛰고 싶다"고 했다. 청중석에서 "작아도 잘하는 선수 워낙 많지"란 말이 나즈막이 흘렀다.

기자도 오예닮(인천시청)과 김상미(삼척시청) 등 '장대숲'을 휘젓는 작은 거인들이 많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었다. 연단 위 화면에라도.

스포티비뉴스=광장동,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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