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심판 기술위원 강습회가 1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렸다. ⓒ 광장동, 임창만 기자
[스포티비뉴스=광장동, 박대현 기자 / 제작 임창만 기자] "지도자도 규정집(rule book)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감독은 선장이다. 배(구단)와 선원(선수)은 물론 항해(핸드볼)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도 두루 공부해야 한다."

살레 비나슈허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심판위원장은 차분한 말씨로 설득했다. 아시아 최강, 비유럽 국가 가운데 독보적인 전력을 뽐냈던 한국 핸드볼이 부활 청신호를 키기 위해선 룰을 향한 지도자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4시간 동안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AHF 심판 기술위원 강습회가 1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렸다. 비나슈허 위원장 강연을 줄기로 40명이 넘는 현직 지도자와 심판, 전력 분석원이 열띤 대화를 나눴다. 

아시아 대표 포청천 말은 일방으로 흐르지 않았다. 한국 핸드볼인 질문과 반대·동조 의견이 물처럼 쏟아졌다.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급물살을 탔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했을 때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지도자가 정확히 룰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 핸드볼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좋은 심판이 만들어지는 토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도자 역할을 7가지로 나눴다. 첫머리에 '능력과 독립성(availability & independency)'을 꼽았고 이어 '핸드볼 규칙과 기술 전략에 관한 높은 이해도'를 제시했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룰을 몰라도 기술과 전략을 높은 수준으로 (코트 위서) 구현할 수 있다면 성적은 좋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핸드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물음표가 뜬다. (지난해 7월) 규칙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선수는 잘못된 플레이를 펼치고 감독은 소모적인 항의를 지속한다. 이런 장면을 (국제대회에 나선 한국 대표 팀에게서) 많이 봤다. 규칙 변화를 민감히 받아들이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핸드볼 발전은 선수와 지도자, 심판, 협회, 기술위원 등 모든 주체가 골고루 성장할 때 이뤄진다. 비나슈허는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지도자의 정확한 룰 숙지가 좋은 심판, 선수를 양성하고 기술위원과 소통하는 데 핵심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심판이 (계속해서) 실수하는 이유에는 (여러 개가 있겠지만) 현장 지도자와 선수가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쓸데없이) 항의하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심판이 아닌 감독 선수에게도 규정집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칸도 맥락은 비슷했다. '한국핸드볼협회(KHF)와 AHF, 국제핸드볼연맹(IHF) 규정과 지침에 관한 (정확한) 인식'을 적었다. 세 단체간 미묘한 규정 차이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불신 씨앗이 된다는 논지였다.

조화를 이룰 건 이루되 현실적인 차이에 관해선 명확히 인지하면서 간극을 메워나가자는 주문을 건넸다.

네 번째로는 '개성과 권한(personality & authority)'을 제시했다. 감독이 자기 성격을 지도 방식에 투영하는 건 상관없으나 이 가르침에 잘못된 부문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선수는 코치를 믿고 따른다. 그래서 현직 지도자가 잘못 가르치거나 룰에 기반하지 않은 항의를 하면 문제가 이중삼중 더 커진다. 이게 쌓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면 권한과 권위를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섯 번째로는 '총제적 분석 능력' 함양을, 여섯 번째는 '(폭넓은) 경험'을 키워드로 적어 냈다. 과연 한국 핸드볼인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 영상을 직접 찾아보고 유럽 강호가 구사하는 최신 전술을 주경야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지난달 1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IHF 국제지도자 연수회에서 내용과 똑닮았다. 당시 강연자였던 폴 런드리(프랑스), 디트리시 스페이트(독일) 코치는 "기존 포메이션 개념을 머릿속에서 지워라.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등 유럽 강호는 이미 6-0, 5-1 같은 전통 전술을 흘려보냈다. 구애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핸드볼을 더 넓게 보면서 총체적인 분석 능력을 지닐 것과 직접 관람이든 영상이든 다양한 세계 핸드볼을 보면서 경험 폭을 넓고 깊게 구축하라는 메시지였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는 '압박감'을 꼽았다.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철저히 시험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 적대적인 심판과 관중, 견고한 공수 조직력을 지닌 팀과 마주했을 때도 오롯이 자기 역량을 꺼내보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심판 기술위원 강습회가 1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렸다. ⓒ 광장동, 임창만 기자
IHF 규정은 3년 전 대폭 수정됐다. 지난해 7월에 한 번 더 다듬어졌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변경된 최신 핸드볼 룰을 차근차근 소개했다.

새롭게 바뀐 규칙으로는 5가지를 꼽았다. ①패시브 플레이 ②골키퍼 실격 조건 ③골키퍼가 없는 상황에서 언제 7m 드로가 주어지는지 ④비디오 판독 ⑤잘못된 백넘버나 다른 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투입된 선수 처리 규정을 언급했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패시브 플레이에 관한 수동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패시브 플레이란 특정 팀이 공격적이지 않은 경기 진행이나 고의적인 지연을 시도할 경우 사전 경고하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공격권을 빼앗는 규정을 가리킨다.

"심판이 패시브 플레이 시그널을 보였을 때 (해당 팀은) 최대 6회 패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코트에선)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심판 재량이다. 한두 차례밖에 패스를 돌리지 않았는데도 패시브 플레이를 선언할 수 있다. 공격적이지 못한 흐름이 시그널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판단될 경우 곧바로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6회를 초과해 7~8번 패스가 이뤄졌는데도 선언되지 않을 수 있다. 패스 숫자를 세는 건 심판 재량이기 때문이다."

즉, 패시브 플레이 사전 경고를 더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라는 신호로 읽어야지 이를 수동적으로 해석할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팀 공격성이 현저히 떨어졌거나 선수 교체시 슬렁슬렁 걸어서 벤치를 향할 때도 심판은 패시브 플레이 신호를 보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바뀐 규정 2번째 목록에 기입된 골키퍼 실격 요건도 세세히 설명했다. 10개가 넘는 영상을 일일이 화면에 띄워 부연했다.

'고의성'에 포커스를 맞췄다. 패스를 받은 공격수가 골 에어리어 밖에서 골키퍼와 충돌해도 둘 사이 거리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되면 골키퍼는 실격되지 않는다. 골키퍼가 충돌을 야기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격수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실격이나 카드 유도를 위해 고의로 부딪혔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밖에도 코트 복귀하는 골키퍼가 타팀 선수와 부딪혔을 때 의도적으로 충돌한 게 아니라 공 궤적을 따라가다 벌어진 일이라면 실격 요건에서 배제된다. 공 주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딪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골키퍼가 공격수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되면 실격 배제는 물론 공격권도 수비 팀에 건너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고의성이다.

비디오 판독 설명에도 30분 가까이 할애했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오늘(10일)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운을 뗐다.

SK핸드볼코리아리그와 국제 대회에서 '휘슬 온도차'를 설명했다. 한마디로 한국 레프리는 처벌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었다. 세계 대회에서 실격과 블루 카드까지 나올 수 있는 플레이가 한국에선 2분 퇴장에 그친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십 몇 개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손바닥과 팔꿈치로 상대 얼굴을 가격했는데 2분 퇴장이 주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국에선) 즉시 실격 처리된다. 매우 위험한 수비"라고 했다. 

이어 "지금 이 장면에선 공격수가 점프한 상태에서 목이 뒤로 꺾일 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다. 최소 실격 조치하거나 블루 카드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2분 퇴장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고의성을 떠나 공과 상관없이 팔꿈치를 쓰는 플레이는 레드 카드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 빠르게 달리고 있는 선수 뒤에서 충돌해 넘어뜨릴 때도 실격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한국 지도자들도 공감했다. 비나슈허 위원장이 예시로 든 파울 영상이 느린 화면으로 리플레이될 때마다 짧은 탄식이 흘렀다. "(한국 팀 수비가) 세긴 세네" "목 다치겠다"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비나슈허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한국 지도자에게 당부했다. 한국 심판진의 오심 정도를 떠나서 항의가 다소 지나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국제 무대에선 어느 정도 눈감고 가는 부문이 있는데 오히려 국내 리그에서 지도자, 선수가 더 격렬히 항의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작은 점(點·판정 실수와 같은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지 말고 하얀 바탕(긍정적인 면)에 눈길을 더 두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4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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