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펭조우가 21일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레슬링 여자 68kg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오성홍기를 들었다. 중국은 22일 오전 현재 금메달 30개 은메달 18개 동메달 12개로 멀찌감치 선두로 치고 나갔다.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글쓴이가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 곡조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취재할 때다. 아직 두 나라 외교 관계가 맺어지기 전 일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은 여권 대신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조직 위원회가 발급한 대회 참가 증명서를 들고 입국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중국이 큰 규모 선수단을 보냈고 이 경기장 저 경기장에서 중국 국가가 연주됐지만 그건 4년 전 일이었다.

4년 뒤 이번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었고 이번에는 더 많이 중국 국가를 들어야 했다. 가는 경기장마다 ‘오성홍기’가 올라가고 ‘의용군 행진곡’이 울려 퍼지니 대회 중반쯤 멜로디를 따라 할 정도가 됐다.

이 대회에서 중국은 금메달 183개와 은메달 107개, 동메달 51개로 금메달 54개와 은메달 54개, 동메달 73개인 한국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3회 연속 종합 1위에 올랐다. 이후 중국은 아시안게임 메달 레이스에서 독주하고 있다. 중국은 1974년 테헤란 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 세 번째 대회만인 뉴델리 대회에서 1위로 올라섰다.

베이징 대회에서 중국이 거둬들인 금메달 숫자는 한국을 비롯한 금메달을 딴 13개 나라의 전체 금메달 127개보다 56개나 많았다.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결과였다. 그런데 중국의 금메달 욕심은 끝이 없었다. 심판 판정이 영향을 미치는 종목에서는 어김없이 편파 판정 시비가 일었다.

복싱 경기에서 북한은 심판 판정에 격렬하게 항의하다 아시아아마추어복싱연맹으로부터 이미 경기를 치러 패배한 선수를 비롯해 모든 선수의 출전을 금지당했다. 경기력이 뛰어난 북한이 경기를 치르지 못한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7개국이 복싱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한국전쟁 때 인민해방군을 파병해 이른바 혈맹(血盟) 관계인 중국과 북한이지만 금메달 앞에서 두 나라는 아군이 아니었다. 체조 경기장에서는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북한 임원들을 한국 취재진이 거드는 장면도 있었다. 이런 일은 북한이나 몽골 같은 나라가 국제 대회에서 국력 문제 때문에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많이 나왔기에 가능했다. 한국이 1950~70년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나 몽골 같은 나라가 당한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이다.

중국이 아시안게임에 데뷔한 1974년 테헤란 대회 이전에는 일본이 이런 식의 독주를 했다. 56년 전인 1962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대회를 보자. 일본은 금메달 73개와 은메달 56 개, 동메달 23개로 2위인 인도네시아(금 11 은 12 동 28)를 압도했고 금메달을 딴 나라의 전체 47개보다 26개나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수영의 경우 21개 세부 종목 가운데 19개의 금메달을 휩쓰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일본의 자리를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이어받은 것이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레이스 출발 총성과 함께 육상 100m 경기로 치면 50m 정도는 앞서 나간 상태로 대회를 치르곤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22일 오전 현재 금메달 30개와 은메달 18개, 동메달 12개로 2위인 일본(금 12 은 17 동 18)과 3위인 한국(금 8 은 12 동 14)을 상당한 격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금메달 48개가 걸려 있는, 중국의 메달밭이기도 한 육상은 25일 시작한다. 또 다른 메달박스인 다이빙은 27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다. 41개의 금메달이 주인을 기다리는 수영은 19일 레이스를 시작했는데 18살 여고생 4관왕인 이키에 리카코를 앞세운 일본의 강력한 저항에 다소 밀리는 듯하지만 22일 오전 현재 금메달 기준 11-10으로 앞서 있고 이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은 자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아시안게임을 자기들 전국체육대회 정도로 여길 만하게 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때 실질적으로 올림픽 무대에 데뷔한 중국은 첫 대회에서 옛 소련등 여러 나라가 불참한 가운데 일본(금 10 은 8 동 14, 7위)과 한국(금 6 은 6 동 7, 10위)을 제치고 단숨에 4위(금 15 은 8 동 9)로 올라섰다. 랑핑이 이끄는 여자 배구, 체조 3관왕 리닝 등이 중국의 금메달 레이스에 힘을 보탰다. 리닝은 은퇴한 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스포츠 의류 사업으로 부자가 됐다.

1988년 서울 대회 11위,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4위, 1996년 애틀랜타 대회 4위, 2000년 시드니 대회 3위, 2004년 아테네 대회 2위에 이어 2008년 자국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드디어 세계 스포츠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이후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미국에 이어 2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2001년 제112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경쟁 도시인 토론토와 파리, 이스탄불, 오사카를 따돌리고 제29회 여름철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은 메달 레이스에 총력을 기울인 끝에 금메달 숫자에서 미국을 51-36으로 눌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여러 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금메달을 거둬들인 종목은 역도 사격 유도 체조 펜싱 수영 양궁 배드민턴 조정 레슬링 탁구 요트 태권도 카누 복싱 등으로 육상과 승마 그리고 구기 종목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종목에서 오성홍기를 국기 게양대 가장 높은 곳에 올렸다.

중국 스포츠가 이렇듯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미스런 일들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세계 육상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마군단(馬軍團)’ 금지 약물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무역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기존 자산인 엄청난 인구에 경제력을 더해 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에서 무서운 ‘황색 돌풍’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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