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응원전을 준비한 반둥한인회.
▲ 반둥 시잘락하루팟스타디움을 한국의 홈으로 만든 인도네시아 교민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반둥(인도네시아), 유현태 기자] 벌써 10일 보내고 반둥을 떠난다. 자카르타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반둥은 남자 축구 조별 리그 일부 경기만 치르는 곳이다. 자카르타와 비교해 조금 조용하고 여유가 있고 녹색이 많은 도시였다. 

취재의 차원에서 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학범호는 첫 경기에서 바레인을 6-0으로 이기면서 금메달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후론 좋지 않았다. 말레이시아가 스리백을 펼치면서 도무지 공간을 찾지 못한 채 1-2로 패했다. 약팀이 강팀을 종종 잡는 축구라지만 믿기 싫은 일이었다.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은 좋지 않은 분위기가 반영된 듯 조심스럽게 펼쳐졌다. 천신만고 끝에 1-0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올라 자카르타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기사의 상당수는 경기 내용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잘되고 또 잘 되지 않았는지. 감독과 선수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아마 한국에 있는 팬들도 카메라로, 또 기사로 한국의 축구 경기를 주로 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 발 뒤에서 열심히 성원해주신 분들의 이야기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바로 반둥한인회다 반둥에서 불과 10일 정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기회가 있어 전화로, 또 경기날 만나 몇몇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반둥한인회는 최선을 다해 응원전을 준비했다. 편대영 반둥한인회 수석부회장은 "우리는 아마추어다. 어떻게 보실런지 모르겠다"면서도 "응원 도구, 응원 티셔츠, 응원까지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경기 2달 전 부터 SNS로 경기를 홍보하고 이동 방법을 설명했다. 경기 날에는 킥오프 3,4시간 전에 나와 경기장 입장을 도왔다. 응원용 티셔츠도 자체 제작해 배포하면서 '붉은 물결'을 만들었다.

'꽹과리 논란'도 있었지만 그게 '교민들의 마음'까지 작게 만들 순 없다. 엄정호 반둥한인회장은 특히 꽹과리 논란을 안타까워했다. 한인회가 응원을 주도적으로 준비했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A매치처럼 도구를 잘 갖출 순 없는 노릇. 그 와중에 자카르타에서 풍물놀이패를 초청해 경기장 분위기를 흥겹게 만드려고 노력했다. 애써 준비한 것들을 한국에서 불편해 하니 속이 상했을 터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아름아름 준비한 응원이 최근의 트렌드에 맞지 않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큼이야 어떤 경기보다도 간절했다.

선수들과 팀에 대한 애정도 컸다. 삶의 터전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축구를 응원하고, 손흥민, 황희찬, 조현우 등 스타플레이어의 경기를 직접 보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눈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쏠렸다. 편 부회장은 "매끼 데려다가 밥을 먹이고 싶다. 아들, 형제를 보는 것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얼굴엔 감출 수 없는 애정과 설렘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이 3경기를 모두 치른 반둥 시잘락하루팟스타디움은 마치 한국의 홈 경기 같았다. 늘 중앙 스탠드를 붉은 옷을 입은 한국 팬들이 채웠다. 꽹과리와 북, 장구가 경기장을 달궜고, 선수들의 몸짓 하나에 팬들도 함께 웃고 울었다. 반둥에서 경기했지만 한국은 홈에서 치르는 경기처럼 압도적인 응원을 받았다.

첫 경기엔 반둥 교민 50명을 포함해 약 500명 정도 응원단이 모였다.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인 17일에 열린 말레이시아전에선 반둥 교민만 1000명 정도에 자카르타에서 이동한 팬들까지 1300명 이상이 모여 응원단을 꾸렸다.3차전도 평일에 열렸지만 어림잡아 5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중계로 한국에 있는 분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리라. 편 부회장은 "인도네시아 교민들 사이에선 난리다. 20년을 살았는데 평생 없을 일"이라면서 인도네시아 교민들에겐 이번 아시안게임이 축제라고 설명했다.

첫 경기를 마치고 공격수 나상호는 "떨렸는데 많은 팬들이 경기 입장할 때 장구도 쳐주시고 북도 쳐주셔서 설렜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우리가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21일 김학범호도 16강 경기를 치를 치카랑으로 이동한다. 키르기스스탄전을 이겼지만 공격력이 영 신통치 않아 우려의 시선이 크다. 탈락할 것이라고 자조적인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기가 죽을 수도 있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마음이 무너지려고 할 때 김학범호가 반둥의 팬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반둥에선 팬들이 3경기 내내 한결처럼 응원을 보냈다. 말레이시아에 골을 먹어도 "괜찮아!"를 외쳤다. 키르기스스탄전을 마치고 관중석에서 선수들 한 명씩 이름을 크게 부르며 격려하던 팬도 있었다. 축제처럼 이 대회를 즐기고 있는 인도네시아 교민들처럼, 선수들도 승리를 마음껏 즐기며 대회를 치르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오는 비판들보단, 경기장에서 만나는 인도네시아 현지 팬들의 응원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나를 믿어주는 팬들의 응원을 힘으로 삼는다면, 무겁게 느끼는 부담감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경기력에 대한 비난이야 결과로 말하면 이내 사라지곤 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