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2월,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는 데니스 텐 ⓒ 한희재 기자

▲ 2015년 2월,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우승한 데니스 텐(가운데) 은메달 조슈아 페리스(미국, 왼쪽) 동메달 얀한(중국)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평창 올림픽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죠. 확실한 것은 제가 고향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응원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케이트를 올림픽 무대에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해요."

생각하지도 못한 비보에 전 세계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물론 선수들도 슬픔에 빠졌습니다.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25)이 19일 괴한의 칼에 저 세상으로 떠났기 때문이죠. 은반 위에서 열정적으로 스케이트를 탔던 젊은 청년의 마지막은 정말 비통했습니다.

데니스 텐은 한국과 매우 친숙한 인물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릅니다. 데니스 텐은 대한제국 항일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고손자입니다. 자신의 조상이 한국 역사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 그는 긍지를 가졌습니다.

4년 전 기자는 김연아 아이스쇼 출연을 위해 내한한 데니스 텐을 만났습니다. 서로 마주보며 장시간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의 미소가 아직도 선하네요. 데니스 텐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동시에 이 종목을 정말 사랑하는 '스케이트 덕후'였습니다. 인터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는 피겨스케이팅을 정말 사랑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몸 관리를 잘해 오랫동안 선수로 남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데니스 텐은 2006년 12살의 나이에 카자흐스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제 대회에 알려진 것은 2008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벨라루스 대회부터입니다.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그는 2011년 자국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딴 뒤 환호하는 데니스 텐 ⓒ Gettyimages

한 단계씩 세계 정상으로 발돋움한 데니스 텐은 2013년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거머쥡니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리스트가 됩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피겨스케이팅 변방국에서 온 그는 올림픽 시상대에 오릅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데니스 텐은 김연아(28)와 한솥밥을 먹게 됩니다.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그는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와 계약합니다. 그리고 그해 5월 열린 김연아의 아이스쇼에 출연합니다.

당시 21살 청년이었던 데니스 텐은 무척 진지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선수였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훈련했기에 영어가 무척 유창했죠. 간간히 한국말도 섞어가며 분위기도 띄웠습니다.

민긍호 선생에 대한 질문을 받자 데니스 텐은 "외고조 할아버지는 훌륭한 일을 하셨다. 나도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분에게 항상 좋은 영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데니스 텐은 남자 싱글에서 우승합니다. 당시 데니스 텐은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사실상 홈에서 열린다고 생각했다"며 "남은 3년 동안 모든 것이 잘 풀린다면 평창에서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자 싱글의 '점프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습니다. 그리고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이 열린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는 역대 최고의 점프 경연장이 됐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데니스 텐 ⓒ Gettyimages

데니스 텐은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그는 하뉴 유즈루(일본)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스페인)과 유력한 올림픽 메달 후보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죠.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리며 11위에 그쳤습니다.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는 16위로 떨어졌습니다.

데니스 텐의 꿈은 '제2의 고향'이었던 한국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이었습니다. 소치 올림픽 이후 애타게 쫓던 꿈은 그의 손을 떠났습니다. 2016년 이후 데니스 텐은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에서는 27위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빙상계에서는 데니스 텐의 귀화설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이 국가적 영웅인 그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죠. 데니스 텐은 "국적은 카자흐스탄이지만 한국도 내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데니스 텐의 올림픽 2연속 메달이라는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쓸쓸하게 빙판을 떠날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상상하지 못한 비극이 닥쳤습니다. 데니스 텐은 19일 오후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려 했던 남성 2명과 몸싸움을 펼쳤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의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3시간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데니스 텐은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현지 카자흐스탄 경찰은 20일 살해 용의자 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 2015년 2월,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뒤 빙판에 쓰러져 환호하는 데니스 텐 ⓒ 한희재 기자

데니스 텐은 힘이 넘치는 4회전 점프와 그 만이 지닌 표현력 여기에 지독하게 노력하는 근성까지 모두 갖춘 스케이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최고 장점은 남다른 피겨스케이팅 사랑이었습니다. 그저 스케이트가 좋아서 오랫동안 선수로 남고 싶다고 밝힌 그의 미소는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뜻하지 않은 이별은 아쉽지만 그가 빙판에서 펼친 퍼포먼스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2015년 2월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의 주인공은 단연 데니스 텐이었습니다. 당시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그는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를 비롯한 고난도의 점프에 성공하며 깨끗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데니스 텐은 국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빙판에 벌렁 쓰러졌습니다. 비록 그는 25살이라는 나이에 일찍 세상을 등졌지만 이 장면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