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월드컵을 향해 뛰는 이근호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때로는 간절히 원할 때보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기회가 찾아온다. 지난해 강원 FC에 입단한 이근호(33)의 선택은 강원으로서는 대형 영입이었으나 이근호의 처지에선 모험이자 도박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군인 신분으로 출전해 러시아와 조별 리그 1차전 선제골을 기록한 이근호는 대회 이후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 카타르 리그로 이적한 뒤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엘자이시에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선수로는 충분히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경기 감각이 떨어진 채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동계 훈련을 치르지 못한 채 나선 전북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준수했지만 돋보이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일찌감치 마음먹고 준비한 강원에서 첫 시즌, 이근호는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 타이를 이루며 2017년 시즌 K리그 MVP 후보에 올랐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이후 멀어졌던 대표 팀과 지난해 11월 A매치에 다시 만났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고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면 개편한 대표 팀은 K리그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인 선수를 대거 시험했고, 이들 가운데 콜롬비아전에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로 선발 출전한 이근호가 가장 돋보였다. K리그 팬들에게 꾸준히 보여 온 치명적인 플레이를 재현했다. 

이근호는 군 복무 문제로 입단해야 했던 울산 현대에서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고, 상주 상무에서 2013년 출범한 K리그 2부 리그 소속 선수로 뛰면서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아쉽게 놓쳤던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잡기도 했다. 

강원 입단 당시 러시아 월드컵에 대해 묻자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무심한 듯 말했던 이근호는, 월드컵이 채 50일도 남지 않은 지금, 기자와 다시 가진 인터뷰에서 “두 번째 월드컵이니 두려움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표 팀에 선발될 4명의 포워드 후보군에 포함되는 이근호는 손흥민, 김신욱, 황희찬 모두와 투톱으로 출전해 좋은 콤비네이션을 보인 바 있다. “다들 개성이 다르니 경쟁이 아니라 조합을 맞추는 것”이라며 팀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 이근호는 “나는 파트너에 맞춰 뛰기 때문에 누구와 뛰어도 괜찮다”고 자신했다. 

이근호는 여러모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기대하고 있다. “예전에 유행했던 4-4-2는 내게 가장 편한 포메이션”이라며 신태용호의 플랜 A로 떠오른 전술도 자신과 잘 맞는다며 웃었다. 두 번째 월드컵에 도전하는 이근호의 각오와 의지를 스포티비뉴스가 단독 인터뷰로 전한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의 이근호 첫 골 순간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의 이근호 첫 골 순간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의 이근호 첫 골 순간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의 이근호 첫 골 순간


다음은 이근호와 인터뷰 전문.

-아직 리그 첫 골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 연초 터키 전훈 등 대표 팀 일정이 이어져 피곤한 면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 잔부상도 좀 있었다. 이제 날이 따듯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나아지고 있다. 괜찮아지고 있다.

-11월 A매치에서 펼친 활약으로 단숨에 손흥민의 최적 파트너로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12월 동아시안컵과 지난 3월 유럽 원정 A매치에 부상으로 고생했다. 이제 노장인 나이다. 몸 상태는 괜찮은가?
다행인건 그때 안 좋았던 거다.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차원이 됐다.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다. 지금은 크게 문제 없다. 괜찮다.

-그 사이 김신욱이나 황희찬이 공격진 주전 경쟁에 가세했다. 11월에 확 앞서나갔는데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대표 팀에서 주전이라고 생각한 적이 아직 없다. 그런 부분은 크게 신경 안 쓴다. 확실히 내가 봐도 희찬이의 장점이 있다. 폭발력이 있고, 팀이 활기차지고, 그런 면에서 엄청 팀에 도움이 된다. 그런 부분을 오히려 더 좋게 본다. 특히,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 팀에서 그게 너무 부각되면 팀에 해가 될 것이다. 신욱이, 흥민이, 저나 희찬이가 공격 라인에 있는데, 다들 조금씩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라거나, 누가 주전이라기 보다 각자 역할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한 대로 역할과 개성이 다르다. 지난해 11월 A매치 당시에는 명단을 보면 포워드로 분류되었는 데 그 뒤로는 미드필더로 분류되더라. 대표 팀에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여기는 것인가?
아니다. 대표 팀에서 거의 투톱으로 분류가 되고 있다. 내가 오른쪽도 볼 수 있고, 왼쪽을 보는 것도 상관은 없는데, 신 감독님은 나를 투톱 자리에 더 염두에 두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투톱을 보면 공격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어서 좋은 면이 있다. 

-대표 팀 공격진의 화두는 손흥민의 파트너 찾기였다. 여러 조합을 시험했지만 그래도 지난해 11월 이근호가 가장 좋았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난 솔직히 흥민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 호흡도 좋았다. 흥민이와 11월에 좋았지만 그때 한번 해본 것 뿐이다. 신욱이도 예전부터 함께 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희찬이도 카타르에서 한번 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누가 어떻다 보다, 다 잘 맞는다. 누가 서든 그 선수의 스타일을 내가 맞춰주는 편이라 상관없다.

-3월 A매치 당시 대표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들었다.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비디오 미팅을 엄청나게 하니까. 세밀하고 약속된 플레이를많이 한다. 공격적인 것도 있지만 특히 수비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공격수들도 전방 수비를 하는 부분에서 많이 준비하고 있다. 

▲ 2017년 11월 콜롬비아전을 통해 대표 팀 주전 공격수로 부상한 이근호 사진|한희재 기자


-공격 보다 수비에 대한 걱정이 큰 게 사실이다. 센터백 선수들에 대한 비판이 크다.
항상 얘기하는 것인데, 골을 먹으면 수비가 못해서 먹은 게 아니라 팀이 못해서 먹은 거라고 생각한다. 득점해도 공격수가 잘해서가 아니라 팀이 그만큼 해줘서 나온 거다. 실수도 같이 비판 받고, 잘해도 같이 칭찬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실수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도 옆에 있는 사람이 커버해줄 수 있으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비디오 미팅 때는 어떤 것을 주로 보나?
참고 영상도 보고, 여러 가지 영상을 본다. 우리 경기도 있고. 유럽 팀의 좋은 장면도 본다. 어느 팀 한정해서 보는 게 아니라, 여러 팀의 좋은 장면을 뽑아서 본다. 토트넘 영상도 있고. 신 감독님이 얘기한 토트넘의 4-4-2도 그런 맥락이다.

-11월부터 12월 동아시안컵, 지난 1월 터키 전훈까지 각광 받았던 대표 팀 공격이 3월 A매치에는조금 한계를 느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김신욱 선수의 경우 유럽 원정에선 이전의 파괴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밖에선 우려가 많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느끼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건 다르니까. 우려한 건, 우리가 준비한 디테일한 공격 작업과 훈련의 성과를 강팀을 상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11월 콜롬비아, 세르비아와 경기였지만 홈 경기였고, 원정 경기는 완전히 다르니까. 해보니까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북아일랜드, 폴란드전 모두 찬스를 엄청 많이 만들었다. 넣지 못했지만, 공격적으로는 우리가 준비한 플레이가 충분이 통한다고 느꼈다.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그런 큰 경기장, 좋은 경기장에서 월드컵 분위기 속에 경기를 하면서 얻은 부분도 있다. 

-이야기한대로 결정력이 아쉬웠다. 그 분에는 한국 축구 전반의 숙제다. 선수들의 기술 수준이 좋아졌음에도 결정력 문제가 나오는 것은 체력 문제인가 집중력 문제인가?
뭐, 어떻게 보면 결정력은 어느 나라나 문제 같은데. (웃음) 기본적으로 실수라고는 하지만 실력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슈팅 하기 전에 좀 더 집중력 가져야 한다. 물론 체력이 남아있다면 좀 더 집중력 생길 것이다. 골은 타고난 감각도 있어야 한다. 결국, 찰나의 집중력이 중요하다. 훈련을 통해 열심히 준비하지만, 집중력 문제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결정력의 문제를 집중력에서 찾은 이근호 사진|곽혜미 기자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에 득점했다. 월드컵에서 골맛을 아니까, 또 한번 나가는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것 같다. 이제 좀 알고 준비하는 게 있지 않나?
그때는 뭔가 나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도 하고. 뭐랄까, 몸에 힘도 들어가고. 그런 부분이 있었다. 월드컵 만의 신기한 분위기도 있었고. 여러 감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번 해봤고, 알고 들어가니까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그때보다는, 만약 가게 된다면 좀 더 여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플레이에 좀 더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 여유가 자신감일까?
그렇다. 원래 한번도 안해 본 건 두렵잖아요.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처음이 아니니까.

-그때와 비교하면 조주첨 결과가 더 어렵다. 16강은 어렵다는 외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부담감을 낮춰주는 면도 있나?
뭐, 당연히 밖에서 봤을 때 우리가 4순위라고, 외국 언론도 얘기하고.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오히려 더 편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걸 걸고. 모 아니면 도다.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시즌 강원에서도 4-4-2 포메이션으로 초반 경기력과 성적이 좋다. 대표 팀도 4-4-2를 쓰고, 4-4-2에서 본인의 강점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공격수, 투톱을 보는 입장에선 4-4-2가 편한 면이 있다. 원톱 보다 투톱이면, 공격수 두 명이 가까운 위치에서 있어서 공격을 풀어가기 좋다. 빠른 선수가 있으면 밀집해서 수비하다 카운터하기 도 좋다. 다만 미드필드 숫자가 부족해지는데, 그걸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중요하다.

-본인이 측면 미드필더를 오갈 수 있어서 그런 점에서 4-4-2에서 폭 넓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예전부터,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포메이션이고 포지션이긴 하다. 그런데 워낙 그 포메이션이 옛날에 많이 했다. 요새는 원톱을 많이 한다. 그 당시엔 원톱이 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포메이션인 것은 맞다.

-작년에 K리그 MVP 후보에 올랐다. 올 시즌에는 월드컵도 있고 강원의 전력도 더 좋아졌다는 평가다. 개인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게 많은 해다.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소속팀에선 우선 기본적으로 작년보다 높은 순위에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야 강원이 더 나아질거라 생각하고. 6위 이상 성적을 내고 싶다. 대표 팀은 뭐 중요한 해니까. 성적을 떠나서, 뭐랄까, 경기를 하고 났을 때 비난보다는, 그래도 잘 싸웠다는. 잘 싸우고 최선을 다했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고 싶다. 그만큼 좋은 경기력으로 잘해서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이다.

▲ 두 번째 월드컵을 기다리는 이근호 사진|곽혜미 기자


-좋은 경기력이라면 여러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우선 K리그에서는 작년 시상식 때 이럴 줄 알았으면 골 욕심을 더 내볼걸 한다는 말도 했었다. 아직 도움만 있고 골이 없는데 달라진 것인가?
아니다. 이제는 좀 더 욕심을 내려고 한다. 초반에 몸도 안 좋았고. 이제 어느 정도 욕심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팀이 이기려면 포인트가 필요하니까. 집중하려고 한다.

-두 번째 월드컵에서 보여주고 싶은 경기력은 어떤 것인가? 첫 번째 월드컵 때 못보여준 게 있나?
그런 건 없다. (웃음) 그냥 팀적으로. 제일 중요했던 것은, 지난 대회에 나는 골을 넣었지만, 대표팀에 대한 분위기가 안 좋았다. 그게 아쉬운 거다. 골은 넣었지만 티도 못 낼 정도로 팀이 안 좋았는데, 이번엔 반대로 팀이 좋은 분위기 속에 마무리해서, 비난이 아니라, 어느 정도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게 바람이다. 워낙 지금 많이 비난 받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선배입장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 후배들의 모습도 너무 안타깝고. 가까이서 지켜보면 다들 애쓰는 걸 아는데. 이렇게 같은 대한민국 국만들에게 응원을 못 받는 게 많이 힘든 거잖아요. 월드컵이 반전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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