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오른쪽)과 정재원이 24일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결승전을 마치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평창특별취재팀 신명철 기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알찬 성과를 올렸다.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마지막 날인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과 김보름이 남녀부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2010년 밴쿠버 대회 5개(금 3 은 2)를 뛰어넘는 한 대회 최다 메달의 값진 성적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남자 1000m에서 김윤만이 첫 올림픽 메달(은)을 획득한 이후 오랜 기간 침묵하다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 평창 대회까지 3개 대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30여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1971년 2월 태릉선수촌 안에 개장한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전경 ⓒ대한체육회
올림픽 메달과는 상당 기간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이영하가 197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발전 가능성을 보였다. 평창 대회 남자 1500m 동메달의 주인공 김민석은 2015년 바르샤바(폴란드) 2016년 창춘(중국)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연속 종합 준우승을 했다.

또 스프린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90년 배기태가 우승하는 등 수준급 성적 올렸다. 이후 1995년 밀워키(미국) 대회에서 김윤만이 우승한 데 이어 이규혁이 2007년 하마(노르웨이) 대회와 2008년 히렌벤(네덜란드) 대회에서 연속 우승했고 2010년 오비히로(일본) 대회에서는 이규혁이 우승, 이상석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올라운드(500m 1000m 5000m 10000m)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없지만 세부 종목별로는 1997년 나가노 대회에서 이규혁, 2000년 밀워키 대회에서는 최재봉이 500m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배기태가 500m에서 1987년 히렌벤 대회와 1988년 메데오(소련) 대회에서 연이어 1위에 오른 데 이어 1990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대회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여자부의 경우 유선희가 1991년 하마 대회와 1993년 베를린(독일) 대회 500m에서 각각 3위와 2위를 차지했다.

▲ 1968년 건국대 안에 있는 일감호에서 열린 제4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 장면. 일감호 위에 있는 홍예교에서 관중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한체육회
1936년 가르미시-파르텐키르헨(독일) 대회 일본 선수단에 3명의 한국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포함돼 있었으니 오래전부터 한민족은 빙속(氷速)) 종목에서도 상당한 소질을 보인 것이다.

다만 1970년대 이전 상황을 보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발전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1961년 꽝꽝 얼어붙은 한강에서 열린 제4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입장식 장면. 뒤로 한강교가 보인다. ⓒ대한체육회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가 제27회 전국동계체육대회를 1947년 1월 스피드스케이팅을 한강에서, 아이스하키를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각각 열렀다는 내용은 아이스하키 성장 관련 기사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후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어떤 곳에서 열렸는지, 시간 여행을 겸해 떠나 본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10월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제32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의 동계 대회는 1952년 1월 수원의 서호 특설 링크에서 치러졌으나 빙질이 나빠 기록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1952년 10월 서울운동장에서 제33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됐는데 이 대회의 동계 대회는 1953년 1월 청주시 명암 연못 특설 링크에서 열렸다.

*1954년 1월 열린 제34회 전국체육대회 동계 빙상 대회는 서울 대방동 쪽 한강 특설 링크에서 열렸고 동계 스키 대회는 2월 대관령에서 치러졌다.

*제4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 빙상 대회는 1959년 1월 한강 특설 링크에서 열렸고 아이스하키는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벌어졌다.

*제41회 전국체육대회 동계 빙상 경기 대회는 1960년 1월 서울운동장 특설 링크에서 열렸다.

서울운동장에 둑을 쌓고 물을 가둔 뒤 얼려 빙판을 만들어서 경기를 했다.

*제45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1964년 2월 춘천 토질거리 특설 링크와 대관령 스키장에서 분산 개최됐다. 그해 1월에는 서울 창신동에 실내 링크(통칭 동대문 실내 링크)가 문을 열어 동계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태게 된다.

*1966년 제47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원주 특설 링크와 대관령 스키장에서 분산 개최됐다. 원주시 중심부에 있는 봉산천에 정규 링크와 아이스하키장, 피겨스케이트장 마련돼 동계 대회 사상 처음으로 스키를 제외한 3개 종목의 경기를 한자리에서 치렀다.

*1968년 제49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체육대회는 동대문 실내 링크와 건국대 그리고 대관령 스키장에서 각각 나뉘어 열렸다.

건국대? 건국대 안에 있는 예쁜 연못인 일감호에서 전국 동계 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것이다. 

*1969년 제50회 전국 동계체육대회는 빙상 경기는 춘천, 스키는 대관령 스키장에서 각각 열렸다. 춘천 공지천은 서울 한강과 함께 1960년대 빙상경기의 주요 무대였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물론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경기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거센 강바람 때문에 컴펄서리[규정 종목] 연기를 하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믿기 어려운 일화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1972년 제53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과 대관령스키장에서 분산 개최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빙(自然氷)이 아닌 인공으로 얼린 얼음 링크가 1971년 2월 태릉선수촌 안에 들어섰다. 

*1977년 제58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빙상 종목은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과 서울국제스포츠센터(동대문 실내 링크), 스키 종목은 진부령 스키장에서 열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빙상 경기장이 없어 한강 또는 서울운동장 간이 링크, 건국대학교 일감호 등지에서 경기를 했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이번 대회를 비롯해 최근 20여년의 선전은 요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노력한 선배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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