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점화를 앞두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김연아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2018년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은 4년 전 소치 올림픽과 비교해 여러모로 재미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남녀 싱글에서 선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죠.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에서는 세계 최고 점수가 나오지 않았지만 '4회전 점퍼'들의 경쟁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아이스댄스에서는 테사 버츄(29)-스캇 모이어(31)조가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줬죠. 페어는 '올림픽 무관의 여제'였던 알리오나 사브첸코(32, 독일)가 5번의 도전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사브첸코는 강한 집념은 세월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여자 싱글은 러시아에서 온 두 명의 10대 소녀에게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현역 최강자로 불린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8)와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소녀' 알리나 자기토바(15, 이상 러시아)가 그들이죠.

사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메드베데바가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우승할 것이라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더 타임스지와 ESPN 등 언론들은 압도적인 기량을 갖춘 메드베데바가 평창의 여왕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은 메드베데바를 외면했습니다. 지난해 그는 발목뼈와 발가락뼈 사이에 있는 중족골 골절로 고생했습니다. 진통제를 맞으면서 대회 출전을 강행한 메드베데바는 결국 깁스를 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12월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과 러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했죠.

▲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금, 은메달을 휩쓴 알리나 자기토바(왼쪽)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오른쪽)의 지도자인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운데) ⓒ GettyIimages

지난달 그는 2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렀습니다. 고향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서 3연패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자기토바가 이 대회에서 1위에 올랐고 자신은 2위에 그쳤습니다. 이 대회의 결과는 평창 올림픽의 메달 색과 같았했습니다. 두 선수는 큰 실수 없이 경기를 펼쳤지만 기술점수(TES) 기초 점수에서 3점 이상 앞섰던 자기토바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두 선수는 모두 비범한 재능을 가진 점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훈련과 경기를 대하는 자세와 열정도 모두 훌륭합니다.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최고의 기량을 갖췄지만 지독하게 노력하는 '연습벌레'입니다. 이들이 각종 국제 대회에서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24일 저녁 평창에 있는 MPC 평창룸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러시아 기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 기자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스타니슬라브 포즈드냐코프 올림픽 선수단(OAR) 단장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의 입장은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는 조직적으로 약물 복용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몇몇 약물 복용이 적발된 선수의 개인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포즈드냐코프 단장 외에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의 안무가인 다니엘 글레이켄거(27(도 함께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뛰어난 두 선수와 함께해서 굉장히 기쁘다. 두 선수 모두에게 필요한 트레이닝과 안무 코치를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자기토바(가운데) 은메달리스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왼쪽) 동메달리스트 케이틀린 오스먼드(오른쪽) ⓒ GettyIimages

메드베데바는 첫 올림픽 무대에 선 소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는 항상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올림픽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들었어요. 다른 국제 대회와 비교해 굉장히 신경도 많이 써야하고 긴장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럽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와 비교해 오히려 올림픽 무대가 더 침착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빙판에서 후회 없이 경기할 수 있었죠. 다음 올림픽에도 출전하려고 합니다. 저는 피겨스케이팅을 정말 좋아하기에 오랫동안 선수로 남고 싶어요."

자기토바는 15살 소녀답지 않게 매우 침착했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도 표정이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니요.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시상대에 있는 사람이 과연 슬퍼할까요? 솔직히 저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이번 올림픽은 저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자고 난 뒤 제 옆에 금메달이 있을 때 비로소 제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질문 가운데 자기토바가 항상 프로그램 후반부에 점프를 몰아서 뛰는 것도 있었습니다. 프리스케이팅의 경우 2분이 지난 뒤 후반부에 점프를 몰아서 뛰면 기초점수에 가산점이 붙습니다. 최대한 많은 점수를 받기 위해 러시아 선수들은 이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 질문은 다니엘 안무가가 답변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최종 승자가 된 알리나 자기토바 ⓒ GettyIimages

"현재 규정된 룰에 따라 이렇게 하고 있고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알리나(자기토바)는 이것(점프를 후반에 뛰는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수죠. 점프를 후반부에 넣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선수들의 경기는 점점 피겨스케이팅의 예술성보다 기술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과거 카타리나 비트(독일)와 김연아(28)가 보여준 감동을 주는 경기는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리던 날 이 경기가 펼쳐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는 김연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후배인 이준형(22, 단국대)과 여자 싱글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을 만난 김연아는 '만약 이번 올림픽에서 선수로 뛰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김연아는 "저는 은퇴한 지 4년이 지났다. 한 시즌마다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다르다. 저는 아예 다른 시대의 사람이라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가 뛰었던 시대와 비교해 기술적으로는 더 많은 선수가 성장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기점으로 피겨스케이팅의 점수는 높아졌습니다. 지나치게 높아지는 점수에 대한 고민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김연아가 말했듯 과거와는 다른 시대에서 진행되는 선수들의 기량을 깎아내리는 일도 문제가 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인 케이틀린 오스먼드의 프리스케이팅 ⓒ GettyIimages

기술의 비중이 높아진 현재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문제의 열쇠는 동메달리스트인 케이틀린 오스먼드(23, 캐나다)에게 있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SBS 해설위원으로 참여한 이준형은 "여자 싱글 경기 가운데 오스먼드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오스먼드는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보다 점수는 낮았지만 가장 여운을 주는 경기를 했습니다. 오스먼드의 프리스케이팅은 평창 올림픽에서 기억되어야 할 퍼포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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