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504년 스위스에서 제작된 한 그림에서는 근대적인 수준의 소총 사격 대회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부터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사격 대회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 유럽 각지에 총이 보급되기 시작한 15∼16세기에 걸쳐 사격 경기는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897년 프랑스 리옹에서 제1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개최됐고 1907년에는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7개 나라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국제사격연맹을 창설했다. <2편에서 계속>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외국의 문물과 함께 근대 스포츠가 이 땅에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외국인 선교사와 교사들이 스포츠 소개와 도입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1896년 영국인 교사 허치슨이 지도한 영어학교 운동회는 육상경기 도입의 출발점이었고 각급 학교의 설립은 체조 보급을 촉진했다.
 
조선 정부는 승마와 검도, 사격 등 군인들에게 필요한 종목들의 도입에 앞장섰다. 1904년 9월 설립이 공포된 육군연성(硏成)학교는 오늘날의 국방연구원에 해당하는, 장교들의 재교육 기관이다. 육군연성학교는 장교들에게 전술과 사격술, 체조, 검술을 가르치고 이들 과목의 원리를 연구하도록 했다. 육군연성학교의 사격 교육이 우리나라 사격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KBS 드라마 ‘징비록'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이 땅에서 사격이 시작된 것은 왜의 조총이 도입된 16세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사격은 전쟁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육군연성학교에서는 장총 사격 대회가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병탄된 이후에는 사격과 관련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대한제국 이후 스포츠로서 사격이 뒤늦게 보급된 상황은 1945년 해방 이후 각 경기 단체의 움직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방과 더불어 체육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활기를 찾으면서 종목별 경기 단체 창립이 줄을 이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조선송구협회를 시작으로 조선체조협회, 조선육상경기연맹, 조선탁구협회, 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 조선빙상경기연맹, 대한테니스협회, 조선유도연맹 등이 창립되고 조선축구협회와 조선농구협회는 재건됐다. 또 1946년에는 대한배구협회와 조선럭비축구협회, 조선아마추어레슬링협회, 조선야구협회, 조선스키협회, 대한승마협회가 출범했고 1947년에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조선하키협회가 탄생했다.

대한사격연맹은 거의 모든 경기 단체가 출범한 뒤인 1955년 2월 8일 창설됐다. 그러나 쟁쟁한 선배 종목들을 제치고 1978년 가장 먼저 세계선수권대회를 태릉사격장에서 치렀고 이 대회에서 한국은 올림픽 유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 사격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김윤기(감독 겸 선수)와 추화일이 처음으로 출전해 50m 권총과 300m 소총 3자세에서 각각 30위와 19위를 기록한 이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사이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의 리호준에게 먼저 금메달을 내주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6위 이내 입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 및 선수 위주로 소수 정예 선수단을 꾸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1차적으로 확정된 선수단은 여자 배구와 복싱, 역도, 레슬링, 유도 등 5개 종목에 39명(임원 13명 선수 26명)이었다. 이는 1952년 헬싱키 대회보다 4명이나 적은 역대 최소 규모였다.

그러나 7월 프랑스에서 벌어진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자유중국(대만)을 3-0, 북한을 3-1로 꺾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은 남자 배구(임원 2명 선수 12명)가 합류한 데 이어 서독 현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육상의 박상수(남자 높이뛰기)와 백옥자(여자 포환던지기) 그리고 수영의 조오련, 역시 현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사격 대표팀(임원 1명 선수 5명)이 추가되면서 62명(임원 6명 선수 46명)으로 선수단 규모가 크게 늘었다.

사격은 입상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대한사격연맹의 강력한 요청으로 선수단에 포함됐고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소구경복사에서 최충석이 60위, 트랩에서 김태석이 33위, 김남구가 41위 그리고 스키트에서 박도근이 44위, 박성태가 56위에 그쳤다. 사격은 다른 종목 관계자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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