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인천, 이재국 기자] 'SK 왕조'의 혈통을 이어온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2018년 가을야구에서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박정권(37)과 김강민(36)이 '삼겹살 데이트'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야구계에서도 소문난 입담꾼들인 둘은 삼겹살을 구워 가며 SK 우승의 뒷얘기와 내면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15일자 <①편>"우승의 영광, 씻을 수 없는 '흑역사'", <②편>"Mr.옥터버 별명 싫었었다"에 이어 16일자에 <③편>과 <④편>을 이어간다. <③편>에서는 #1.강화도, #2.고깃집, #3.베테랑을 주제로 얘기했다.


▲ SK 박정권(왼쪽)과 김강민.
#1. 강화도

"한 달 정도는 너무 힘들더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야. 이게~."

두 베테랑에게 2018년은 위기의 시간이었다. 박정권은 아예 개막 엔트리에서 이름이 빠졌고, 김강민은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초반 3경기 동안 대수비로만 나간 뒤 단 한 번도 타석에 들어서지 못한 채 2군행 지시를 받았다.

기약 없는 2군 생활. 홈경기 때도 인천의 문학(SK행복드림파크)이 아니라 강화도에 있는 SK퓨처스파크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다. 2군은 보통 오전 9시에 훈련을 시작한다. 집에서 강화까지는 차로 약 1시간. 출근길을 뚫고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오전 7시 정도부터는 움직여야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1군 선수들의 야행성 생활 패턴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박정권이 "처음 한 달간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고 시즌 초반 강화도 출퇴근 시간을 떠올리자 김강민은 "(강화도는) 옛날 유배지였잖아요"라며 웃었다. 박정권은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됐는지 거리가 점점 짧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6월 13일에 둘이 함께 1군에 호출됐다. 김강민은 이후 다시는 2군에 내려가지 않고 1군에서 버텼다. 그러면서 올 시즌 팀 경기수(144)의 절반이 약간 넘는 8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8(235타수 70안타), 10도루, 14홈런, 46타점, 40득점을 기록하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박정권은 6월 24일까지 6경기만 뛴 뒤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에 1군에 올라오면서 가을잔치를 준비했지만, 올 시즌 1군에서는 14경기만 출장해 타율 0.172(29타수 5안타), 2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후 가장 초라한 성적표였다.

박정권은 "고참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겪고, 그런 과정인 것 같다. 내가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건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내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거였으니까, 나 자신과의 싸움이 들어가는 거였다"고 설명했다. 김강민은 "은퇴하면 어차피 유니폼 못 입는다. 아직은 선수니까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그만둬야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다"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2군 생활이 마냥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박정권은 "필사적인 후배들, 그런 어린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전엔 저렇게 했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면서 초심을 찾은 수확을 설명했다. 김강민 역시 "좋은 경험이기도 했고 배운 것도 많았다"고 동의하면서 "그건 사실인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생활? 힘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 [스포티비뉴스=인천, 곽혜미 기자]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10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SK 깃발 응원.
#2. 사장 박정권

인터뷰 장소는 박정권의 아내와 처남이 운영하는 인천 송도의 '천하무적'이라는 고깃집. '어떻게 가게를 열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박정권은 "처남이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잘 되면 내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은퇴 후에도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는 부분이니까"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팬분들이 정말 고맙게도 많이 찾아준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야구팬, 특히 SK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집이다. 팬들도 '혹시나 박정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이곳을 방문할 터. '가끔씩 와서 팬들이 식사할 때 고기도 잘라주느냐'고 묻자 박정권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러긴 하는데, 지금 셀프로 정해놔서"라며 웃더니 "저희 집은 셀프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라며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박정권은 한국시리즈 우승 후 팬들을 위해 한턱 쐈다. '1+1 행사'를 통해 고기 1인분을 시키면 1인분을 더 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입소문을 탔는지 팬들이 운집했다. 고기도 고기지만, 이번 가을야구의 영웅 박정권과 우승 기분을 내기 위해 팬들이 몰려들면서 고깃집은 그날 문전성시를 이뤘다.

▲ [스포티비뉴스=인천, 곽혜미 기자]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27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9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끝내기 투런을 날린 SK 박정권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팔리면 팔릴수록 적자는 아니었을까. 박정권은 매출에 대해서는 "음…, 안 물어봤는데"라고 뜸을 들이더니 "조금은 남았다. 딱 요정도 까지만 대답을 하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좋은 취지로 참 잘했다. 하길 잘했다"고 자평했다. '우승 보너스를 미리 팬들에게 일정 부분 돌려드리겠다는 의미였느냐'고 묻자 폭소를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SK 선수뿐만 아니라 박정권과 친분이 있는 다른 팀 선수들도 종종 찾는 사랑방이 되고 있다. 박정권과 인터뷰를 한 이날도 한때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화 정우람 부부가 방문하기도 했다. 정우람은 "와이프(아내)끼리도 예전부터 언니 동생하며 가깝게 지낸 사이라 서울에 올라온 김에 인사하러 왔다. 오늘 정권이 형이 인터뷰하는 날인 줄도 모르고 왔다"며 웃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곽혜미 기자]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10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7회말 1사 3루 상황에서 SK 김강민이 역전 1타점 희생플라이를 날리고 있다.
#3. 베테랑

최근 KBO리그는 베테랑들에게 유난히 찬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한때는 '베테랑 모셔가기'가 유행을 탄 적도 있지만, 요즘엔 반대로 각 팀마다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기치로 내걸면서 '베테랑 내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정권과 김강민이 가을야구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신선했다. '왜 베테랑이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제대로 보여줬다.

박정권은 "요즘 누군가는 방출, 누군가는 계약을 안 하겠다, 이런 기사를 매일 접하는데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라며 아쉬움을 나타낸 뒤 가을야구에서 자신과 김강민이 활약하며 베테랑의 가치를 높인 부분에 대해 "베테랑으로서 조금은 잘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강민은 베테랑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선수들하고 함께 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아주고, (후배들이) 힘들어할 때 조금의 도움?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게 베테랑"이라며 "고비가 올 때 후배들이 '저 선배가 잘 해주면 이기니까' 그런 것(믿음)들? 그런 게 있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8년 만의 우승. SK 왕조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선수들이 은퇴를 하고, 다른 팀으로 떠났다. 그래서 SK 선수단 내에서도 이번에 우승을 처음 경험한 선수가 많다. 박정권은 "처음 우승한 후배들에게 '기분이 어때?' 라고 물어보니까 '계속 하고 싶다'. '내년에도 하고 싶다', '프로에 들어와서 우승이 이런 건지 몰랐다'고 얘기를 하더라"면서 "정말 좋은 경험을 한 거다. 플레이오프부터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이 엄청 됐을 것 같다. (우리 후배들이) 부상 없이 쭉쭉 올라갔으면 좋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박정권과 김강민은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2007년 데뷔하자마자 왕조의 DNA를 만든 김광현도 어느덧 만 30세에 접어들었다. 2007년 19세의 영건이 이제 30대의 농익은 에이스로 성장해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자신의 손으로 확정했다. 최종 6차전에서 보여준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연장 13회초 한동민의 솔로홈런으로 5-4로 역전에 성공하자, 불펜에서 몸을 풀던 김광현은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우승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 첫 타자 백민기를 2루수 정면 빗맞은 직선타로 잡아냈다. 이어 혼이 깃든 시속 153㎞와 154㎞ 강속구 3개로 양의지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두산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었다. 박건우를 고속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며 두 팔을 들고 포효했다.

▲ [스포티비뉴스=잠실, 곽혜미 기자]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6차전이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5-4 승리를 하며 우승을 거둔 SK. 경기를 마무리 한 SK 김광현이 환호하고 있다.
박정권은 "마지막 수비하러 올라가서 (김광현이 몸을 풀며) 공을 던지는데 평소보다 안 가더라. 속으로 '야, 광현아. 이러면 안 돼' 그러고 있는데, 선수들은 김광현이 마운드에 올라간 순간 이미 우승을 결정한 듯 모두 덕아웃에서 일어서서 흥분을 했다"고 돌이키면서 "그래서 '야, 그러지 마라. 끝난 거 아니다. 차분하게 냉정하게 있어라'라며 선수들을 진정시켰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박정권은 이어 "그런데 첫 타자한테 '플레이볼' 하고 볼이 날아가는데 '어, 이겼어. 야, 우승하겠다' 싶더라"고 당시의 속내를 밝혔다.

김강민은 "난 그런 공 처음 봤다. 진짜. 센터(중견수)에서 보는데 공이 와~. 그렇게 들어갈 줄 몰랐다. 그냥 '끝났다' 했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면서 "첫 타자에게 변화구를 던지길래 컨디션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몰랐다. 첫 타자 잡고 두 번째 타자 양의지 선수한테 바깥쪽 직구를 딱 던졌는데, 스피드(154㎞)를 보는 순간 '글러브 벗어도 되겠다'고 느꼈다. 올 시즌 가장 좋은 볼이었다. 그런 볼이 날아갈지 몰랐다"며 당시 느낌을 되살렸다. <④편>에서 계속

▲ SK 박정권(가운데)고 김강민(오른쪽)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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