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식은 미국으로 무사 수행을 떠났다. 그의 곁에는 항상 태극기가 있다. ⓒ콤바테 아메리카스 제공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국내 팬들은 말한다. "한국은 좁다. 실력을 키우려면 미국으로 가라."

미국이 종합격투기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선수는 없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엄두가 잘 안 난다. 현지에서 무슨 돈으로 훈련을 받고, 무슨 돈으로 생활을 할 지 막막할 뿐이다.

여기 도박에 가까운, 미국행을 결정한 파이터가 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미친 척' 태평양을 건넌 라이트급 파이터 '코리안 갱스터' 박원식(31)이 그 주인공이다.

박원식은 선수 생활이 안 풀린 편이다. 고질적인 목 디스크 때문에 여러 번 은퇴를 결심했다. 부상 뒤 성적도 기대만큼 안 따랐다. 2016년 치른 4경기에서 2승 2패를 기록했다.

로드FC 마지막 경기에서 난딘에르덴에게 1라운드 1분 3초 만에 KO로 지고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희미해질 때쯤인 지난해 10월, 박원식은 혈혈단신 명문 팀 '얼라이언스 MMA'로 향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라이언스 MMA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다. 에릭 델 피에로 코치를 중심으로 브랜든 베라, 도미닉 크루즈, 필 데이비스 등 유명 선수들이 훈련한다. 제레미 스티븐스도 이 팀 소속이다.

선수부 훈련비는 매달 300달러 정도라고 해도, 물가가 센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기는 만만치 않다. 박원식은 "동료들의 경기를 보러 사비로 대회를 돌아다니니 적지 않게 돈이 들어간다"며 웃었다.

그러나 박원식은 아깝지 않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진화된 코치진 분업화에 감탄하는 중이다.

"전체적인 전략은 에릭 델 피에로가 맡는다. 그 밑에 레슬링과 그라운드 담당 코치인 니키 피드몬드가 있다. 타격에 레예스, 아드리안 코치가 있고 피지컬 트레이닝 담당이 따로 있다. 미트 코치만도 두 명이다. 각자 코치들은 자신의 영역만 죽어라 판다. 도미닉 크루즈(전체 전략), 필 데이비스(레슬링), 마일스 주리(주짓수) 등은 코치들을 서브한다."

"여러 코치와 함께 상대 선수에 대한 맞춤 훈련을 섬세하게 할 수 있다. 실수는 나올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을 크게 줄인다"는 게 박원식이 짚은 미국 명문 팀의 강점이다.

▲ 박원식은 지난 18일 콤바테 아메리카스에서 플라잉니에 이은 파운딩 연타로 호세 루이스 메드라노에게 1라운드 1분 48초 TKO승을 거뒀다. ⓒ콤바테 아메리카스 제공

인생을 건 모험에 한창인 박원식은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겠다는 각오다.

"해 보고 싶은 실험이 많이 있다. 배울 것도 많아서 꿈만 같다. 나중에 다음 세대들을 위해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외국 생활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실험은 결국 실전에서 완성된다. '바키'에서 '코리안 갱스터'로 별명을 바꾼 박원식은 지난 18일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히스패닉을 겨냥한 종합격투기 단체 '콤바테 아메리카스'에 아시아인 최초로 출전했다.

완벽한 경기 내용이었다. 호세 루이스 메드라노를 1라운드 1분 48초 만에 KO로 이겼다.

오른손 카운터펀치가 정확한 타이밍에 꽂혔고, 하단 태클 페이크 이후 솟아오르며 찬 니킥이 메드라노를 휘청거리게 했다. 찰진 파운딩 연타는 여전히 박원식의 강력한 무기였다.

박원식은 21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로드FC에서 방심하다가 난딘에르덴에게 지고 1년 11개월 만에 나선 경기라 긴장이 많이 됐다. 미국에서 한 훈련을 믿었다. 그리고 코치님들을 믿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의 모든 공격에 카운터로 맞서면서 압박하는 게 작전이었다. 그 선수가 할 게 없어서 멈출 때 복부 딥(앞차기)이나 어퍼컷, 플라잉니를 하려고 했는데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며 기뻐했다.

박원식은 무사 수행만 하는 게 아니다. 한국 홍보 대사로도 맹활약 중이다. 2년 2개월 만에 거둔 승리 후, 태극기를 두르고 카메라를 향해 외친 한마디는 "대한민국!"이었다.

지난 8월 욱일기 디자인을 SNS에 올린 도미닉 크루즈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친절하게 알려 주기도 했다.

크루즈는 박원식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합니다. 욱일기 무늬가 나치와 같은 의미인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팀 한국인 박원식을 만나 내 사과 메시지를 정식으로 전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14승 1무 7패 1무효 전적을 쌓은 박원식은 이 모험의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앞날을 기대한다.

"콤바테 아메리카스에 더 머물 줄 알았다. 그런데 델 피에로 코치가 더 위로 간다고 말씀하시더라. 그 위가 어딜지 기대하는 중"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박원식은 지난해 10월 미국으로 건너가 얼라이언스 MMA에서 훈련하고 있다. '콤바테 아메리카스'에서 KO승을 거두고 케이지에 올라가 포효하고 있다. 그가 외친 한마디는 "대한민국"이었다. ⓒ콤바테 아메리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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