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현욱은 북한의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축구 은메달 멤버였다. 당시 서현욱은 북한 국내 팀 4·25 소속이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열혈 축구 팬이라면 서현욱이라는 북한 축구 선수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에서 열린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 출전했고 북한 대표 선수로 28경기에 나서 2골을 넣었으니까. 그런데 이 선수가 동유럽의 그리 크지 않고 부유하지 않은 나라인 알바니아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팬은 많지 않을 듯하다.

북한 선수가 어떻게 유럽 축구의 변방 알바니아 리그에서 활동하게 됐을까.

먼저 서현욱의 축구 경력을 살펴본다.

2014년 인천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북한은 한국에 연장 접전 끝에 0-1로 져 준우승했다. 북한으로서는 한국과 공동 우승한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36년 만에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쉬웠겠지만 1990년 베이징 대회 은메달 이후 입상한 적이 없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결과였다.

북한은 이 대회 축구 종목에 골키퍼 리명국과 수비수 강국철 두 명의 와일드카드를 포함해 20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이 대회에 나선 북한 선수들 가운데 국내 팬들에게 꽤 알려진 선수로는 박광룡을 들 수 있다. 공격수인 박광룡은 당시 스위스 1부 리그인 슈퍼 리그 FC 바두즈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었다. FC 바두즈는 리히텐슈타인 클럽인데 스위스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북한 국내 팀인 기관차와 월미도에서 뛰다 2011년 스위스 리그 FC 빌에 입단한 박광룡은 이후 바젤 벨린조나 바두즈 로잔 등 스위스 리그에서 활약했고 2017년 시즌부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SKN 푈텐 소속으로 뛰고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미드필더 서현욱은 골은 넣지 못했지만 드리블을 비롯한 뛰어난 개인기와 공간 침투 능력 등으로 국내 축구 전문가들 눈길을 끌었다. 한국이 녹다운 스테이지에서 북한을 만나게 되면 경계해야 할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이듬해인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때 서현욱의 이름이 다시 보인다. 1992년 생인 서현욱이 23세 이하 대표 팀에 뽑혀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데 이어 곧바로 국가 대표 팀에 선발된 것이다.

북한은 B조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0-1로 져 무겁게 출발했는데 서현욱은 이 경기에 박광룡(당시 바젤)과 함께 투톱으로 나섰다. 이 대회 명단에 서현욱은 공격수로 등재됐다.

이 대회 북한 선수들 가운데에는 량용기(베갈타 센다이) 차정혁(빌 1900) 리영직(도쿠시마 볼투스, 이상 당시 소속)) 등 국내 팬들에게 꽤 알려진 선수가 여럿 들어 있었다. 이런 가운데 22살의 서현욱이 후반 중반에 빠지기는 했지만 매우 중요한 조별 리그 1차전에 선발로 출전했다는 건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 1-4, 중국에 1-2로 져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호주 아시안컵에 이어 이번에는 그해 6월 열린 201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2차 예선 때 서현욱의 이름이 다시 보인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데 이어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했지만 아시안컵 본선에 나섰고 다시 다음 아시안컵 예선에 출전한 것이다.

서현욱은 예멘과 치른 H조 1차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넣었다. 이 경기는 북한의 1-0 승리로 끝났는데 예멘이 부정 선수를 출전시켜 경기 후 북한의 3-0 승리로 처리됐다. 북한은 2차 예선에서 5승1무2패로 조 2위가 돼 3차 예선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3차 예선 B조에서 3승2무1패로 조 1위인 레바논(5승1무)과 함께 UAE 아시안컵 본선행 막차를 탔다.

이 예선 이듬해인 2016년 11월 9일 홍콩에서 열린 2017년 동아시안컵 2차 예선 괌과 두 번째 경기에서 서현욱은 A매치 2호 골을 넣었다. 북한은 3승으로 2차 예선을 통과해 2017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본선에 나섰으나 3패로 꼴찌에 그쳤다.

그런데 동아시안컵 본선에 나선 북한 대표 팀 명단에 유망주 서현욱의 이름이 빠져 있다. 이 무렵 서현욱은 유럽 리그 진출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외국 리그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 국내 팀 4·25에서 활동한 서현욱은 2017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 리그 명문 클럽인 HSK 진스키 모스타르에 입단했다. 이어 같은 리그 NK 고스크 가벨라로 임대됐고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SK 제문으로 이적한 뒤 2018~19 시즌 현재 알바니아 수페르리가 KF 파르티자니 티라나에서 활동하고 있다.

불과 2년여 사이에 일어난 입단~임대~이적~이적인데 그의 축구 이력을 설명하는 글에는 영어를 못하는 게 선수 생활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간인 2017년 3월 26일부터 올해 3월 28일까지 열린 UAE 아시안컵 3차 예선에 서현욱은 소집되지 않았다. 북한축구협회는 지난달 13일 타시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친선경기에는 외국 리그 선수를 부르지 않았다.

서현욱은 동유럽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사이 ‘북한에서 잊혀진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 북한의 축구 유망주가 알바니아 리그로 밀려나기까지 마음고생은 또 어땠을까. 한국 선수들처럼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북한 축구 청년 서현욱의 현재는 어땠을까.

서현욱은 1980년대 이후 경제력으로 대비되는 한국과 북한의 스포츠 경쟁력을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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