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벌새' 스틸.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스포티비뉴스=부산, 이은지 기자] 영화 ‘벌새’는 한 여중생의 이야기다. 또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당시를 살았던, 그 시대를 살았던 모두의 이야기다.

‘벌새’의 주인공인 은희(박지후)는 그 시대를 살아간다. ‘가부장’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 살았던 소녀다. 공부를 잘해서 온 가족의 관심을 받았던 오빠와 사고만 치는 언니 아래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게 지냈던 아이다.

하지만 1초에 19~90번의 날개 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비록 그 행동이 바보 같을 지라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꿀을 먹기 위해 날아가는 벌새처럼 날개 짓을 한다.

‘벌새’는 연출을 맡은 김보라 감독의 꿈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20대 후반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 중학생 시절 꿈을 많이 꿨다.

“남자들은 다시 군대를 가는 꿈을 꾼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중학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는데, 마치 공포영화 같았다. 왜 그런 꿈을 꿀까 탐구를 하다가 중학교 때 심리적 주둔군이 있었던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이야기까지 올라가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을 만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벌새’가 나왔다.”

은희는 감보라 감독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는 관객 일수도 있다. 또 이 글을 읽는 독자이기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기도 하다. ‘벌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내 이야기처럼 공감이 가기도 한다. “개인적인 것 같은데, 굉장히 내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의도한 바”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벌새’의 주인공인 은희는 조용하지만 나름의 일탈을 즐긴다. 오빠와 언니, 부모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김보라 감독은 은희에 대해 “조용한 날라리”라고 했다.

“놀건 혼자 다 논다. 하지만 언니처럼 대놓고 놀지는 못한다. 선생님에게도 크게 반항하지 않는다. 꼭 날라리가 아니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를 다니면서 인사이더처럼 지내는 듯 하지만 다들 외로워 한다. 도태나 소외 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은희는 그냥 그런 아이다.”

▲ 영화 '벌새' 스틸.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은희는 그렇게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은희가 보는 어른들은 유독 답답하고 엄마, 아빠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오빠는 자신을 때리고, 언니는 항상 자신에게 피해만 주는 듯 하다. 그때 자신을 ‘이해하는 어른’이 나타난다. 같은 왼손잡이이기도 한 한문 강사 영지(김새벽)는 은희의 미래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영지가 사라진다. 동경이자 애정을 품었던 영지의 부재는 은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처음으로 자신에게 “오빠가 떄리면 때리지 말라고 말해라”라고 했던 영지의 부재. 김보라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영지가 은희에게서 사라졌을 때 마음이 아프지만 서로 소중했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아름다운, 더 이상적인 존재가 된다. 영지의 영혼이나 세계관이 어린 은희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마도 은희가 컸을 때 영지를 닮아 있을 것 같았다.”

은희가 영지에게 특별하고 애틋한 마음을 품은 이유는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물어봐 주고, 자신의 꿈을 존중해주는 영지가 달라 보였을 것이다. 자신이 만났던 어른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느낌을 받을 법 했다. 이는 영지도 마찬가지다.

“영지는 눈이 밝은 사람이다. 은희가 자기 소개를 할 때 버벅거리는 것을 보고 내면의 소용돌이를 느꼈을 것이다. 또 은희가 자기 고백을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한다. 영지는 그런 아이를 그냥 지나치는 어른이 아니다. 동정이 아니라 그런 아이와 인간적으로 교류하면서 관계를 맺으려 했을 것 같다.”

▲ 영화 '벌새' 스틸.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벌새’ 후반부는 단절을 상징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어떤 이들은 가족을 잃었고, 어떤 이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감독은 당시 사건을 통해 가족의 해체와 사회의 단절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10월 21일’이라는 타이틀도 감독의 의도였다.

“단절이다. 두발 규정이 있었던 시절이었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특별 대우를 받았다. 예를 들어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반에는 에어컨이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편하지만은 않았다고 하더라. 모두에게 상처인 것이다. 집안에서의 서열 등이 단절을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을 단절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성수대교 붕괴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했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의 주인공 은희의 시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 단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빈부의 격차, 가정 내부의 관력 관계, 학교 내부 상하 관계 등은 본질적인 관계 맺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단절 시킨다”고 말하며, 199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벌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대중들도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