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양영자(왼쪽)와 현정화. 둘은 1987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초대 챔피언 자리를 예약했다. ⓒ대한체육회 90년사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1987년 세계선수권자인 한국의 김재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는 유도 60kg급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케빈 아사노에게 1-2 판정으로 지는 바람에 두 선수의 맞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재엽은 대진운이 좋지 않아 금메달을 따기까지 경기당 4분19초를 뛰어야 했다. 김재엽은 2회전에서 소련의 다크호스 아미란 토티카시빌리를 경기 종료 10초를 남기고 안뒤축후리기 효과로 누르고 금메달로 가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 토티카시빌리는 다음 대회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의 윤현을 꺾고 이 체급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김재엽은 결승에서 3분45초 만에 아사노가 지도 벌칙을 받은 것을 끝까지 잘 지켜 4년을 기다려 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김재엽이 시상대 위에 섰을 때 태극기가 소련기와 미국기, 일본기를 좌우에 거느리고 올라가는 장면이 장충체육관에 펼쳐졌다.

65kg급 이경근은 1회전을 부전승, 2회전과 3회전을 한판승으로 가볍게 통과한 뒤 준준결승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을 치렀다. 이경근은 전해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소련의 유리 소콜로프를 절반으로 누르고 올라온 프랑스의 신예 부르노 카라베타와 일진일퇴 공방전 끝에 2-1 판정승을 거두고 큰 고비를 넘겼다.

이경근은 준결승에서 전해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헝가리의 타마스 부이코를 소매들어업어치기 한판으로 누이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인 폴란드의 야누스 파블로프스키는 전해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야마모토 요스케를 한판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시종일관 공세를 편 이경근은 파블로프스키를 3-0 판정으로 꺾고 유도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95kg 이상급 조용철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동메달을 차지했다.

4년 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으나 미국의 폴 곤잘레스(금메달)에게 판정으로 져 조기 탈락했던 복싱 플라이급 김광선은 서울 올림픽 당시 현역 군인이었다.

1회전과 2회전을 RSC로 장식하는 등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벌인 김광선은 준결승에서 소련의 티모페이 스크리아빈을 시종일관 몰아붙인 끝에 5-0 판정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동독의 안드레아 테브스를 4-1 판정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광선은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라이트미들급 박시헌은 준결승에서 캐나다의 레이몬드 다우너리를 5-0 판정으로 누르고 결승에 올라 미국의 로이 존스와 맞붙었다. 박시헌은 경기 내용에서는 크게 앞서지 못했지만 3-2 판정으로 존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헤비급 백현만은 미국의 레이 머서에게 KO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헤비급에서 아시아 선수가 메달을 딴 건 백현만이 처음이었다. 페더급 이재혁은 동메달을 추가했다.

1926년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런던에서 연 탁구는 오랜 역사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종목이지만 서울 올림픽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남녀 단식과 남녀 복식 등 4개 세부 종목이 치러졌다.

한국은 세계적인 탁구 강국인 중국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맞대결을 펼치며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유남규는 64명이 출전한 남자 단식 예선 리그에서 7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다. 16강전에서 옛 유고슬라비아의 조란 프리모락을 세트스코어 3-0으로 꺾은 유남규는 8강전에서 스웨덴의 외르겐 페르손을 3-1로 따돌리고 큰 고비를 넘었다. 또 다른 8강전에서 김기택은 전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자인 스웨덴의 얀 오베 발트너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물리쳐 한국 선수끼리 결승을 치를 수 있는 발판을 놓았다.

발트너는 1989년과 1997년 세계선수권자이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1980년대~90년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강자였다. 준결승에서 스웨덴 탁구의 또 다른 강자인 에릭 린트를 3-0으로 일축한 유남규는 김기택과 벌인 결승에서 3-1로 역전승해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초대 챔피언이 됐다. 펜홀드 드라이브 전형으로 세계를 제패한 유남규는 이때 약관의 20살이었다.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조로 강력한 금메달로 후보로 거론된 양영자-현정화 조는 예선에서 1세트만을 내주며 7전 전승으로 8강에 올랐다. 셰이크핸드 드라이브 전형의 양영자와 펜홀드 전진 속공형의 현정화는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이에 맞서는 중국은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이리리-리후이펀 조가 양영자-현정화 조에게 맥없이 무너지자 서울 올림픽에서는 특이하게도 똑같은 왼손 셰이크핸드 드라이브 전형인 천징-자오즈민 조를 내보냈다.

그러나 양영자-현정화 콤비는 결승에서 첫 세트만 20-22로 내줬을 뿐 2, 3세트를 21-8, 21-9로 가볍게 잡아 올림픽 여자 복식 초대 챔피언 조가 됐다. 남자 복식 안재형-유남규 조는 김완-김기택 조를 2-0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추가했다.

핸드볼은 여자 금메달, 남자 은메달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

여자 핸드볼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알게 모르게 전력을 키우고 있었다. 1980년 올림픽 때는 아시아·아프리카·북미로 이뤄진 세계 예선을 통과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불참했지만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은 여자부 조별 리그 A조에서 체코와 미국을 각각 33-27, 24-18로 꺾었으나 유고슬라비아에 19-22로 져 1패를 안고 4강이 겨루는 결승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유고슬라비아에 23-29로 져 금메달을 놓쳤다.

한국과 소련, 노르웨이, 유고슬라비아가 벌인 결승 리그는 물고 물리는 접전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노르웨이를 23-20으로 꺾은 데 이어, 여자 핸드볼이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올림픽 정식 세부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연속 우승했고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른 강호 소련을 21-19로 물리치고 2승1패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이후 여자 핸드볼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대회와 2004년 아테네 대회 은메달, 2008년 베이징 대회 동메달 등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금메달 3개의 덴마크에 이어 2018년 현재 올림픽 통산 메달 순위 2위에 올라 있다.

메달만이 아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와 2012년 런던 대회 4위 등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출전한 올림픽에서 8회 연속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세계 규모 대회 단체 구기 종목 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여자 핸드볼이 한국 단체 구기 종목 간판으로 떠오는 서울 올림픽 금메달 멤버는 개회식에서 남자 농구 허재와 함께 선수 선서를 한 손미나 외에 김영숙 송지현 김명순 김춘례 김현미 이기순 기미숙 이미영 성경화 김경순 석민희 임미경 박현숙 한현숙이다.

남자부 조별 리그 B조에 든 한국은 스페인에만 20-23으로 졌을 뿐 헝가리를 22-20, 동독을 23-22, 체코를 29-28, 일본을 33-24로 꺾고 4승1패를 기록해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해 강호 소련에 25-32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남자 핸드볼 은메달 멤버는 최석재 윤태일 이경모 이상효 김만호 박영대 고석창 신영석 강재원 박도헌 김재환 임진석 오용기 노현석 심재홍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을 계기로 경기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여자 하키는 조별 리그 B조에서 서독과 캐나다를 4-1, 3-1로 물리친 데 이어 호주와 5-5로 비겨 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영국을 1-0으로 잡고 기세를 올렸으나 결승에서 호주에 0-2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하키 은메달 멤버는 김미선 정은경 한옥경 한금실 조기향 김순덕 장은정 최춘옥 정상현 서효선 진원심 황금숙 박순자 임계숙 김영숙 서광미다.

한국이 치른 5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은메달 획득에 이바지한 임계숙은 비 인기 종목 선수로는 보기 드믄 스타플레이어로 매스컴의 조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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