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국민들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아시아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이스라엘과 갈등으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2개 대회 연속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5개 나라로 편성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 예선 A조에 든 팔레스타인은 사전 경기로 열린 1~4차전에서 대만과 0-0 무승부, 라오스와 인도네시아에 2-1 승리, 홍콩과 1-1 무승부를 기록해 18일 개막식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팔레스타인은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조별 예선 C조에 속해 오만을 2-0, 타지키스탄을 2-1로 꺾은 뒤 싱가포르에 1-2로 졌지만 타지키스탄을 골 득실 차로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녹아웃 스테이지 첫판에서 일본에 0-4로 져 탈락했지만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3개 대회 연속 조별 예선 탈락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2연속 1라운드 통과의 ‘작은 기적’을 이룬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종목에서 선전을 이어 가던 지난 1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유혈 사태가 일어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이 가자 지구 분리 장벽 근처에서 반 이스라엘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는 타이어를 불태우거나 방화용 풍선을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가 격화되자 이스라엘군은 실탄과 최루가스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2명이 숨지고 250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번 시위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이집트와 유엔의 중재로 적대 행위 중단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졌다고 한다.

자국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축구가 국민들에게 위로가 된 사례로 이라크를 들 수 있다.

이라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4강에 올라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선수들은 3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에 0-1로 져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는데도 귀국길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라크는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힘든 과정을 겪었다. 애초 이라크는 2003년 4월 베트남과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홈경기를 치르게 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가시화되자 홈경기 장소가 1차적으로 중립 지역인 시리아 다마스커스로 옮겨졌다.

이 일정마저도 미국과 전쟁으로 연기돼 9월 10일 다마스커스에서 1차전을 갖게 됐고 3-1로 이겼다. 이라크는 9월 17일 베트남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겨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과 최종 예선도 이라크는 모든 경기를 원정으로 치러야 했다.

이라크는 우승을 이룬 2007년 동남아시아 4개국 공동 개최 아시안컵 예선에서도 홈경기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치렀다. 2011년 카타를 아시안컵은 전 대회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거치지 않았지만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예선도 UAE에서 가졌고, 준결승에서 한국에 0-2로 졌다. 이라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도 요르단(2차)과 카타르(최종)에서 치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2차 예선에서는 홈인 아르빌에서 경기를 했으나 3차 예선은 다시 카타르로 홈경기 장소를 옮겨야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예선에서는 시리아(1차)와 UAE(3차)가 홈경기 장소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차 예선과 3차 예선은 다시 홈인 아르빌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최종 예선은 카타르로 홈경기 장소를 다시 이동해야 했다. 유랑 극단 같은 일정에서 올림픽 4강과 아시안컵 우승을 일궈 내며 국민들을 위로한 이라크 축구의 저력이 놀랍다.

베트남이 준우승하면서 ‘박항서 신드롬’을 일으킨 2018년 AFC U-23 챔피언십(2018년 23세 이하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8강 대진은 카타르-팔레스타인, 이라크-베트남 그리고 일본-우즈베키스탄, 한국-말레이시아였다.

축구 팬들에게 이 대진표는 꽤 낯설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구 대회 8강 카드와 거리가 멀었다. 이 대회 이전 두 차례 열린 대회 8강 대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직전 대회인 2016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8강 대진이 카타르-북한, 한국-요르단, 일본-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라크로 짜였다. 상위 3개국인 일본 이라크 한국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티켓을 차지했고 카타르가 4위에 올랐다.

창설 대회인 2013년 오만 대회에서는 요르단-UAE, 호주-사우디아라비아, 한국-시리아, 이라크-일본이 8강 카드였다. 이 대회에서는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이 1~3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3위 결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요르단에 승부차기 2-3으로 져 4위로 밀렸다.

첫 번째 카드인 카타르-팔레스타인이 특히 낯설었다.

팔레스타인은 조별 리그 B조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을 5-1로 크게 이겨 같은 승점의 북한(1승1무1패)을 골 득실 차로 따돌리고 일본(3승)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팔레스타인은 1차전에서 일본에 0-1로 졌지만 2차전에서 북한과 1-1로 비겼다.

팔레스타인은 어수선한 정치·사회적 환경이지만 12개 클럽이 참여하는 ‘웨스트 뱅크 프리미어 리그’를 운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AFC U 23 챔피언십 16강전에서 카타르에 2-3으로 져 탈락했지만 수준급 경기력을 보였다. 카타르는 2019년 UAE에서 열리는 아시안 컵 본선에도 올라 있다. 2014년에는 아시안 컵의 하부 대회 격인 챌린지 컵에서 우승해 그 자격으로 2015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 컵에 자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챌린지 컵이 아시안 컵 하부 리그라고는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대회다. 북한은 2010년 스리랑카 대회와 2012년 네팔 대회에서 우승했다. 팔레스타인은 2012년 대회 준결승에서 박광룡이 두 골을 넣은 북한에 0-2로 진데 이어 3위 결정전에서 필리핀에 3-4로 져 4위를 기록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대표 팀에는 그동안 스웨덴, 스위스, 몰타, 이스라엘, 칠레, 이집트, 모로코, 베트남 등 세계 여러 나라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발탁됐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열린 AFC U 23 챔피언십 대표 팀에는 독일, 이스라엘, 스웨덴, 그리스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23세 이하 대표 팀에는 특이하게도 미국 대학 팀 소속 선수가 2명이 들어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영국령이던 1928년 축구연맹이 조직됐다고 하니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실력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전신인 조선축구협회가 창설된 게 1933년이다.

팔레스타인 축구 역사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1934년 제2회 월드컵에는 32개국이 출전을 신청해 12개 조로 나눠 예선을 거쳤고 본선은 16개 나라가 치렀다. 12조는 아시아·아프리카에 배정됐는데 터키의 기권으로 이집트가 영국 위임 통치령 팔레스타인을 7-1과 4-1로 제치고 본선에 나섰다. 독립된 나라는 아니었지만 80여년 전에 월드컵 예선에 나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잡한 국제 정세 때문에 선조들이 살던 땅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 고단한 신세지만 축구로 위안을 얻곤 한다.

라오스와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추가 시간 결승 골을 터뜨린 압델라티프 바흐다리는 이집트 리그 엘 게이시 클럽에서 뛰고 있다. 홍콩과 4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마흐무드 유세프는 자국 리그인 웨스트 뱅크 프리미어리그 클럽 알 카릴에서 활약하고 있다.

웨스트 뱅크는 팔레스타인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나오는 요르단강 ‘서안(西岸) 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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