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후가 지난해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적시타를 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곽혜미 기자
▲ 이정후의 호쾌한 타격 장면.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정철우 기자]야구 아시안게임 1차 엔트리가 발표된 그 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이정후의 목소리에선 분명 물기가 느껴졌다. 눈물을 겨우 참고 겨우 힘을 내 밝은 척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필자를 포함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위로를 건넸을 것이다. 내용도 대동소이했을 터.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힘을 내라."

아시안게임 대표 팀에 뽑히지 못해 병역 혜택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마음을 추스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정후는 주위의 위로를 건넨 수많은 어른들보다 한 뼘은 더 큰 선수였다. 그의 대답을 듣고난 뒤엔 살짝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도쿄 올림픽까지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제 목표는 프리미어 12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제 대회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밖에 없다. 이정후에게 가장 먼저 '도쿄 올림픽'을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작 병역 혜택 기회를 놓치게 된 아쉬움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정후는 대표 팀 자체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올림픽은 머릿속에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적었다. 

프리미어 12는 병역 혜택이 없는 대회다. 하지만 이정후는 이 대회가 목표라고 했다. 태극 마크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정후는 "대표 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내가 가게 되면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병역 혜택은 결과가 나오면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쫓아다닌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내 첫 목표는 프리미어 12다. 프리미어 12 때는 꼭 대표 팀에 뽑혀서 최고의 선배들과 함께 나라를 대표해 야구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 팀을 그저 병역 혜택의 수단으로 여겼다면 나올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정후는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이 진짜 가장 큰 목표였던 것이다. 이정후의 대답을 들은 뒤엔 어쭙잔은 위로를 건넨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의 진심이 전달이 된 것일까. 이정후는 2차 엔트리 발표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좌타자 일색인 대표 팀 외야 라인. 그러나 타율 1위, 좌투수 상대 타율 약 4할에 이르는 그의 실력 앞에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었다. 

그가 만들어 낼 긍정의 에너지에 기대가 되는 이유다. 진정 태극 마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는 선수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대표 팀은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발탁을 넘어 주전으로까지 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후가 그저 대표 팀을 병역 혜택 정도로만 여겼던 어른들에게 따갑지만 반가운 일침을 놓아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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