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이 주장으로서 동료들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했다.
▲ 말레이시아전 패배 뒤 고개 숙인 손흥민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반둥(인도네시아), 유현태 기자]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긴 게 역사에 남듯이 어제 패배도 우리 커리어에 남을 것이다." - 손흥민

충격적인 패배였다. 한국은 17일 인도네시아 반둥 시잘락하루팟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E조 리그 2차전에 말레이시아에 1-2로 졌다. 예상 외의 패배로 조 1위를 놓쳤다. 1차전 대승으로 올랐던 분위기도 크게 가라앉았고 떨어진 자존심은 말할 것도 없다.

경기 직후 주장 손흥민은 그래서 "솔직히 창피하다"면서 "언제까지나 다독일 수는 없다. 가끔은 격려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따끔한 지적도 필요할 때"라며 강한 쓴소리를 내놨다. 

결과에 충격을 받아 있을 시간도 부족하다. 한국은 곧장 20일 키르기스스탄과 16강 진출을 걸고 맞대결을 펼친다. 김학범호는 자체 미팅으로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모였다. 

손흥민은 언급했던 대로 동료들을 따끔한 말로 자극했다. 손흥민이 남긴 말을 18일 회복 훈련 전 인터뷰에 나선 황인범이 전했다.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긴 게 역사에 남듯이 어제 패배도 우리 커리어에 남을 것이다."

한국-독일전, 그리고 한국-말레이시아전은 판박이처럼 닮은 경기였다.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봤던 언더독이 이변을 만들었다. 달랐던 점은 기적의 주인공 한국이 말레이시아전에선 희생양이 됐다는 것. 

한국은 불과 1달 여 전 러시아 월드컵에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한국은 끈끈하게 버티며 독일을 조급하게 했고 후반 막판 두 골을 몰아넣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감격적인 승리였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간절했던 말레이시아에 고전했다. 11명 전부가 죽어라 한국 선수들을 쫓았다. 체구는 작지만 다부지게 달라붙어 한국 선수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후반전 중반부턴 선수 여러 명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침대 축구라기보단 정말 힘에 부쳐 피치에 주저앉는 듯했다. 간절하게 뛴 말레이시아가 다소 방심했던 한국을 잡았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은 한국 축구에 남을 '최고의 기억' 가운데 하나다. 반면 말레이시아전은 오만, 레바논 등 한 수 아래라 여겨진 팀에게 당했던 '참사'의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다. 손흥민은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모두 중요한 순간으로 남는다고 말한 것이다. 손흥민 역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에 2-4로 패할 때 경기장을 누볐다. 아픈 기억을 안고 있기에 가능한 뼈있는 충고였다.

2018년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의 한국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금메달을 따고 나면 조별 리그의 1패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상관 없이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손흥민의 목소리가 닿았을까. 그랬다면 분명 달라진 자세로 경기를 치를 것이다. 결과는 결국 선수들의 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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