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는 러시아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벨기에에 0-2로 졌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12골 가운데 9골을 세트피스 상황에서 넣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잉글랜드는 14일 오후 11시(이하 한국 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킥오프한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벨기에에 0-2로 졌다.

준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크로아티아에 1-2로 역전패해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반세기 만에 우승 꿈이 물거품이 된 잉글랜드는 3위에도 실패해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성적(4위)으로 돌아갔다. 잉글랜드는 ‘마의 8강 벽’은 넘어섰으나 4강 유리 천장은 뚫지 못해 보일 듯 말 듯한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통산 성적은 우승 한 차례와 4위 두 차례다. 축구 종가 성적으로는 좀 모자라 보인다.

그런데 대회를 마친 뒤 반응을 보면 대체로 이 정도면 잘했다는 것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벨기에가 우리보다 좋은 팀이었다. 어려운 경기였다. 벨기에는 최고 수준의 팀이다. 우리보다 더 멀리 보고 경기했다. 우리는 몇몇 문제를 만들었지만 벨기에는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였다"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선수들은 영국에 돌아갔을 때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클럽 축구가 아니고 선수들을 사올 수가 없다. 여기 있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다. 선수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바랄 순 없다"고 말했다.

패배에 대한 변명인 듯한데, 결과적 할 만큼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1998년 잉글랜드 대표 선수로 잠시 활약한 BBC 해설 위원 디온 더블린은 "잉글랜드 팀이 자랑스럽다. 오늘(14일)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러시아 월드컵은 성공이다. 어린 팀은 높은 곳까지 올랐고, 팬들 모두가 그들을 지지했다"면서 칭찬했다.

이 코멘트는 25살 이하 선수가 12명이나 되니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가 밝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더블린이 지적한 3위 결정전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잉글랜드의 경기력이 세계 4강 수준이냐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듯하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12골 가운데 9골을 세트피스 상황에서 넣었다. 12일 새벽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 준결승전 전반 5분 키어런 트리피어의 골도 프리킥 슈팅이었다. 이 골이 잉글랜드의 대회 12번째 골이자 9번째 세트피스 득점이고 마지막 골이었다.

▲ 1986년 멕시코 대회 개리 리네커[6골] 이후 32년 만에 잉글랜드 출신 득점왕이 될 가능성이 큰 케인은 이번 대회 6골 가운데 3골이 페널티킥 득점이다.
4위 입상 외에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과 가운데 하나가, 아직은 미확정이지만 수상이 유력한 해리 케인의 득점 1위다. 1986년 멕시코 대회 개리 리네커[6골] 이후 32년 만에 잉글랜드 출신 득점왕이 될 기능성이 큰 케인은 이번 대회 6골 가운데 3골이 페널티킥 득점이다.

세트피스 득점도 많은 훈련과 잘 짜인 팀워크의 산물로 볼 수 있겠지만 패스와 패스가 이어지는 필드 골에 견주면 아무래도 평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월드컵 사례는 아니만 차범근은 서독 분데스 리가 시절 기록한 98골(308경기)이 모두 필드 골이었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도 축구 종가다운 실력을 펼쳐 보이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잉글랜드는 영국의 일부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영국 내 4개 축구 협회 가운데 하나가 축구를 관장한다. 잉글랜드는 FA(잉글랜드축구협회) 대표 팀인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 팀은 우리나라로 치면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지방을 묶는 하삼도(下三道) 대표 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영국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영국은 2017년 추정치로 242, 495㎢ 면적에 인구 6천604만229명이고 잉글랜드는 130.279㎢ 면적에 인구 5천561만9,400명이다. 벨기에는 올해 1월 센서스 기준 30,528㎢ 면적에 인구 1천135만8,357명이다. 축구를 면적과 인구로 하는 건 아니지만 잉글랜드가 영국의 일부 지역이라고 해서 벨기에에 밀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4개 협회로 분리돼 출전하기에 받게 되는 불리한 점이 있을까. 역대 월드컵을 보면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외에는 4강 이상 성적을 낸 협회가 없다. 각자 성적도 좋지 않고 이 여파인지 잉글랜드도 썩 좋은 성적표가 아니다.

영국 내 4개 축구 협회의 역대 월드컵 성적을 살펴보면, 1930년 우루과이 대회부터 1938년 프랑스 대회까지 월드컵 초창기 3개 대회에는 영국 내 4개 협회가 불참했다.

1950년 브라질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 2조 2위로 탈락했다.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8강,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 떨어졌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웨일스는 8강에 올랐는데 펠레에게 결승 골을 내주고 우승국 브라질에 0-1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협회 크기에서 형님뻘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74년 서독 대회에서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 2조에 들어 유고슬라비아, 브라질과 1승2무를 기록했으나 골 득실 차에서 2위 브라질에 +3 대 +2로 밀려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 4조에 편성돼 준우승국 네덜란드와 1승무1패로 승점이 같았으나 골 득실 차에서 밀려 탈락했다. 

1982년 스페인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2차 조별 리그 B조 2위로 준결승전에 나서지 못했다. 북아일랜드는 2차 조별 리그 D조 3위(꼴찌)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스코틀랜드는 1차 조별 리그 6조 3위로 탈락했다. 소련과 1승1무1패로 승점이 같았으나 골 득실 차에서 뒤져 2차 조별  리그에 오르지 못했다.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신의 손(비열한 손)’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 1-2로 져 4강 문턱에서 좌절했다. 북아일랜드는 조별 리그 D조 3위,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 E조 4위로 탈락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서독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는 조별 리그 C조 3위로 탈락했다. 스코틀랜드는 스웨덴을 2-1로 잡았으나 코스타리카와 브라질에 0-1로 졌다.       

1994년 미국 대회에는 4개 협회가 모두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초창기 3개 대회를 빼고 1950년 브라질 대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잉글랜드는 유럽 2조에서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코틀랜드는 1조에서 이탈리아 스위스, 북아일랜드는 3조에서 스페인 아일랜드, 웨일스는 4조에서 루마니아 벨기에에 본선 티켓을 넘겼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8강 진출에 실패했고, 스코틀랜드는 A조 꼴찌로 조별 리그에서 대회를 마감했다. 2002년 한일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브라질에 1-2로 져 4강에 오르지 못했다. 2006년 독일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포르투갈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3으로 져 4강에 오르지 못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독일에 1-4로 져 8강에 합류하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 D조 꼴찌로 탈락했다. 이탈리아외 우루과이에 1-2로 지고 코스타리카와 0-0으로 비겼다.

2000년대 들어 영국 내 4개 협회 가운데서는 이번 대회를 포함해 잉글랜드만 본선 무대를 밟고 있다. 쪼개져 출전하는 게 전력상 손실이 있어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4개 협회가 단일팀을 꾸려 영국으로 출전하는 올림픽에서는 어떨까. 당장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영국은 올림픽 초창기인 1912년 스토홀름 대회 이후 1세기 만에 금메달을 노렸으나 8강전에서 한국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4-5로 져 김이 샜다.

이 대회에 영국 단일팀은 라이언 긱스(38)와 크레이그 벨라미(33), 미카 리차즈(24, 이상 그때 나이)가 와일드카드로 출전할 정도로 메달 획득에 총력전을 폈다. 영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우승 3차례(1900년 파리 대회 1908년 런던 대회 1912년 스톡홀름 대회)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일이다. 이후로는 1948년 런던 대회 4위가 유일한 입상 기록이다, 한국은 이 대회 8강에 올랐다.

스포티비뉴스 유현태 기자는 벨기에-잉글랜드 경기 분석 기사에서 이 한마디로 두 팀의 경기력을 요약했다.

“벨기에와 잉글랜드는 똑같이 스리백을 구사했지만 벨기에의 완성도가 확연히 높았다.” 잉글랜드 축구가 벨기에에 한 수 아래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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