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자르가 돌파하고 있다.
▲ '이렇게 빨리 달려야 한다고!' 질주하는 더 브라위너.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점유율의 시대는 가고 이제 속도의 시대가 왔다. 득점을 터뜨리고 싶다면 단지 공을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수 전환 속도를 높여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

벨기에는 14일 밤 11시(한국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킥오프한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잉글랜드를 2-0으로 이겼다.

또 점유율과 관계없이 승패가 갈렸다. '3위' 벨기에는 4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슈팅 수에서도 12-15로 뒤졌다. 하지만 체감한 경기 내용은 벨기에의 압도적 우위였다. 통계로 경기 전체를 설명할 순 없다. 벨기에가 공수 전환 속도에서 훨씬 뛰어나 '공격의 질'이 높았다.

▲ 러시아에 패해 고개 숙인 스페인.

◆ 수비 전술 우세의 시대

점유율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이번 대회 내내 검증됐다. 스페인은 무려 7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도 러시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포르투갈 역시 61% 점유율을 기록하고 우루과이에 1-2로 졌다. 결승에 오른 프랑스도 16강전에서 41% 점유율을 기록하고도 아르헨티나와 난타전 끝에 4-3으로 이겼다. 한국 역시 수비적으로 물러나고 역습을 노려 독일을 2-0으로 잡았다. 한국의 점유율은 채 30%도 되지 않았다. 더이상 점유율이 승리를 연결되지 않는다.

잉글랜드를 꺾고 3위를 기록한 벨기에의 여정도 그랬다. 가장 고전한 일본과 16강전에서 벨기에는 56% 점유율을 기록했다. 일본의 역습 전술에 고전하면서 3-2로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뒀다. 반면 브라질과 치른 8강전에선 43% 점유율을 기록하고도 속도를 살려 2-1로 승리를 거뒀다.

두 줄 수비가 등장한 것이 계기였다.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촘촘하게 조직을 갖추면 전력 약세를 최대한 감출 수 있었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협력 수비로 막고, 스페인처럼 패스가 강점인 팀들에게도 공간을 허용하지 않아 후방으로 밀어냈다. 골이 주로 터지는 중앙을 허용하지 않고 버티기가 가능했다. 이젠 단순히 약팀의 '버티기 전술'이 아니라 이제 거의 모든 팀들이 두 줄 수비를 구사할 줄 안다. 결승에 오른 프랑스도 때에 따라선 두 줄 수비를 잘 세운다.

수비 전술이 우세하지만 '무실점 경기'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무승부'다. 결국 골을 터뜨려야 승리할 수 있다. 핵심은 속도다. 상대가 수비 조직을 갖추기 전에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 개인의 주력의 문제라기보단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 그리고 공을 전진시키는 속도다. 그리고 이 속도를 살리려면 공간 활용이 중요하다.

▲ '전환 속도'가 빨랐던 벨기에는 3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 벨기에가 보여준 '공수 전환 속도'와 '공간 활용'

벨기에는 잉글랜드를 맞아 한 수 위의 속도를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개인 기량이 뛰어나면 유리하다. 벨기에의 에덴 아자르, 로멜루 루카쿠, 브라위너는 속도와 기술을 살려 역습 때마다 잉글랜드 선수들을 위태롭게 했다.

팀이 함께 뛰는 역습은 조금 더 위협적이다. 벨기에는 경기 초반부터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속도감을 살렸고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토마 뫼니에는 왼쪽 측면에서 나세르 샤들리가 오버래핑 이후 올려준 크로스를 앞으로 잘라 움직이면서 마무리했다. 샤들리도 공간으로 움직이고 뫼니에도 공간으로 움직였다. 공간을 빠르게 찾아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 

후반 37분에도 공간을 활용해 추가 득점했다. 케빈 더 브라위너가 속도를 올리면서 돌파를 시도한 뒤 공간으로 넣어준 패스를 쇄도하는 에덴 아자르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후반 34분 케빈 더 브라위너-드리스 메르텐스-뫼니에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공격 전개는 속도와 공간 활용에서 모두 수준이 높았다.

벨기에는 지공 때도 속도를 높일 줄 알았다. 이른바 '눈이 맞는 상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틈이 나면 패스를 찔렀다. 루카쿠와 더 브라위너의 호흡이 매우 좋았다. 루카쿠가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뜨리며 순간적으로 침투하고, 더 브라위너는 두 번 내의 터치로 스루패스를 찔렀다. 간결한 전개에 잉글랜드 수비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역시 속도다.

반면 잉글랜드는 수비에서 공을 빼앗아도 공격 전환에 애를 먹었다. 역습이랄 장면이 없었고 지공으로 전환해 두툼하게 수비벽을 쌓은 벨기에를 처음부터 다시 공략해야 했다. 벨기에의 성실한 전방 압박이 잉글랜드의 전환을 막은 중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잉글랜드 선수들의 '오프더볼' 움직임이 소극적이었다. 공간으로 달리는 선수가 없으니 공이 전방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방에 머무르고 말았다.

57%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잉글랜드의 경기력이 무기력하게 느껴진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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