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변산'에 출연한 배우 박정민. 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스포티비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변산'은 성장드라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자라지 못한, 아직 고향 변산을 떠나온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던 학수의 성장드라마다.

학수의 직업을 무명 래퍼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고아라고 소개하고, 고향을 서울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변산 사투리에도 고향은 서울이라고 일단 우기고 본다.

그런 학수 앞에 돌연 고향 친구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학수 앞에 고향 친구들이 나타나더니 급기야 고향에서 전화까지 온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원망과 분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의 소식이었다.

학수에게 고향은 아킬레스건이다. 학수가 여전히 '무명' 래퍼로 남아 있는 이유도 고향의 핑계를 댄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고, 고향은 그리움 보다는 원망의 대상으로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야 학수는 고향을 다시 대면한다. 자신의 원망의 근원인, 흑역사가 가득한 변산을.

'변산' 속에 등장하는 학수의 랩은 박정민이 직접 썼다. 처음에는 학수에 대한 감정을 써 내려가는 것이 시작이었다. 학수에 대해 생각하던 박정민은 그래도 자신이 학수에 대한 감정을 가장 잘 알 것이라 생각했다.

박정민이 "학수에 대한 전사, 어머니에 대한 전사를 상상으로 쓴 글"을 얀키가 가사로 만들었다. 그러던 중 박정민은 "가사도 써 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가사로 쓰다보니 학수의 전사가 만들어졌고 "아버지가 더 미워졌고, 고향이 싫어졌고, 학수가 외로워 보였던" 박정민은 그렇게 점점 학수의 감정을 느꼈다.

학수의 속내를 담은 랩 가사까지 썼던 박정민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었다. 바로 첫사랑 미경(신현빈)과의 감정이었다. 현재의 학수가 미경을 보는 감정이 어떤 마음일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미경과의 감정이 가장 어려웠다. 아버지나 선미를 보는 감정은 알겠는데, 미경의 감정을 모르겠더라. 여전히 미경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가, 원준에 대한 복수심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미경은 주연이 아니라 많이 나오지 않는다. 짧은 신 안에서 다 해결을 해야 해서 더 어려웠다."

반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제대로 공감했다. 보통 부자 사이일수도 있었다. 영화이기에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 비슷했다. 특히 학수와 아버지의 마지막 신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 박정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양반(아버지)만 잘못 했을까. 어찌됐든 아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 아저씨가 아니라 아버지다. 이제 막 감정의 골을 풀고 서울 올라가서 제대로 음악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일이 꼬인다. 그동안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흐른 눈물이었다."

▲ 영화 '변산'에 출연한 배우 박정민. 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학수의 또 다른 흑역사는 선미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미경과의 고백을 가로챈 선미는 학수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 중 하나였다. 병원에서 선미를 대면했을 때 학수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학수는 선미에게 스며들었다.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선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미를 보는 학수의 시선이 바뀐 시점은 조용히 선미의 뒤를 따랐던 때부터다. 말다툼이 있었고, 선미는 자신의 속내를 토해내고 자리를 뛰쳐나간다. 학수는 조용히 선미의 뒤를 따랐다. 선미가 학수의 뒷모습을 보던 시점이, 학수가 선미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분명한 것은 감정이 변했고 시선이 변했다. 박정민 역시 "그때부터 선미가 각인 됐을 것 같다. 선미를 좋아했던 시점은 아마도 아버지가 떠난 뒤였을 것이다"고 했다.

"조각난 영혼의 먼지엔 빛이 스밀 때 반짝거린단 걸. 알려준 당신을 여태 몰라본 내 마음이 말도 못해. 그래도 구태여 그때의 구태를 애써 변명하지는 않겠어. 그저 내 마음이 가난해서 보여줄 건 상처 밖에 없었어. 받아본 적이 없어서 줄 수 없었던 사랑이야. 미안해. 열여덟의 너와 열두해 후 지금 나의 마음이 같다면 난 너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도 사랑한다고 말해." -'노을' 가사 中-

박정민이 쓴 랩 중 가장 애착이 가고 신경을 많이 쓴 것은 마지막 곡인 '노을'이다. 가장 오래 걸린 이유도 있지만, 점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쏟아 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헌정, 선미에 대한 고백,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다 담겨 있다.

'노을'이 2절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와 선미가 바뀐다. 어머니가 빠지고 선미가 들어오면서 두 사람이 동일시되는 것이다.

학수는 한 문단으로 선미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다. "과거 선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때 마음을 변명할 생각은 없고, 대신 마음이 같다면 사랑한다고 말할게"라고 이야기 하면서 박정민 역시 울컥했다고 했다.

"힙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정말 시골 사람 같은 선미가 날 보고 좋아하는데 울컥하더라. 그 공간에서 내 고향, 시골의 여자친구를 보니 왈칵 하는 감정이 들어 신기했다"는 말은 영화 속 진한 애정신이, 또 로맨틱한 고백이 없었음에도 선미를 향한 학수의 마음을 표현하기 충분했다.

▲ 영화 '변산'에 출연한 배우 박정민. 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변산'은 꼬일 대로 꼬인 순간, 짝사랑 선미(김고은)의 꼼수로 흑역사 가득한 고향 변산에 강제 소환된 빡센 청춘 학수(박정민)의 인생 최대 위기를 그린 작품이다. 현재 극장 상영중이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