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VNL 여자부에 출전한 중국 대표 팀을 이끌고 있는 랑핑 감독은 1980년대 세계적인 레프트 공격수였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국제배구연맹((FIVB)이 월드 리그 국제남자대회와 그랑프리 세계 여자대회를 통합해 올해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인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여자부 1주차 경기가 마무리됐다.

이 대회는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1주일 간격으로 5주 동안 예선을 치른다. 매주 조 편성이 바뀐다. 중국과 예선 성적 상위 5개 팀 등 6개 팀이 결선 라운드에 올라 다음 달 27일부터 7월 1일까지 중국 난징에서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겨룬다.

한국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닝보에서 열린 1주차 경기에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1위 중국을 세트스코어 3-0(25-15 25-15 25-13)으로 꺾는 선전을 펼치며 2승1패로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했다.

네덜란드와 터키만 3승을 거뒀고 벨기에에 0-3으로 일격을 당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벨기에 미국 세르비아 브라질 러시아가 2승1패로 공동 2위 그룹을 이뤘다. 일본과 태국은 1승2패로 1주차 경기를 마쳤다.

한국은 22일부터 24일까지 수원체육관에서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과 2주차 경기를 치른다. 1주차 경기에서 러시아는 태국과 아르헨티나를 3-1로 잡았지만 네덜란드에 0-3으로 졌다. 독일은 브라질을 3-1로 눌렀지만 세르비아에 0-3, 일본에 1-3으로 패했다. 이탈리아는 미국과 터키에 0-3, 폴란드에 2-3으로 패배했다.

결선 라운드 개최국으로 자동 출전하는 중국에 세트를 내주지 않고 이긴 건 대회 중반 이후 본격화될 순위 싸움에서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주 공격수 주팅(198cm)이 빠지긴 했지만 21명 선수 가운데 201cm인 유안신유에를 비롯해 188cm 이상인 선수가 10명이나 되는 장신 군단으로 한국으로서는 매우 힘든 상대였다. 그러나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친 한국은 승리, 게다가 예상 밖 스코어로 홈 코트 중국을 보기 좋게 눌렀다.

경기 내내 웃음기 한번 보이지 않은 중국 벤치의 여자 감독이 글쓴이 눈길을 끌었다. 꽤 오랜만에 본 얼굴이지만 랑핑(郞平)이었다. 1980년대 세계 여자 배구를 풍미한 랑핑을 소개하기에 앞서 아시아 여자 배구 3강의 경쟁 역사를 살펴본다.

아시아 여자 배구 판도는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일본은 여자 배구가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옥 훈련’과 ‘회전 리시브’로 악명을 떨친 다이마쓰 히로부미가 만든 ‘동양의 마녀’ 신화였다.

일본은 이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은메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인 여자 배구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중국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얼굴을 보인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일본은 동메달에 그쳤다. 반면 랑핑이 맹활약한 중국은 첫 출전에서 곧바로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중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동메달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땄다.

중국은 2008년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으나 8년 뒤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3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때 위세를 떨쳤던 일본은 1988년 서울 대회(4위) 이후 메달 구경을 하지 못하다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오랜만에 올림픽 메달(동)의 기쁨을 누렸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바통을 이어받듯 아시아, 나아가 세계 여자 배구 판도를 휘젓고 있을 때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나는 작은 새’ 조혜정, ‘더블 세터’ 유경화와 유정혜 등이 당시 주전 멤버였다. 북한은 1972년 뮌헨 올림픽 3위 결정전에서 한국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중국이 12년 만에 여자 배구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감독이 이번 대회 1주차 한국과 경기에서 중국 벤치를 지킨 랑핑이다.

레프트 공격수인 랑핑은 24살 때 중국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로 이끌었다. 1982년 페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20대 초반에 이미 세계적인 선수 대열에 올라섰다.

랑핑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뉴멕시코대학 보조 코치로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은퇴하기 직전인 1990년 자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준우승의 주역이 됐다.

랑핑은 많은 국제 대회 경력과 착실한 지도자 수업을 바탕으로 1995년 중국 여자 대표 팀 사령탑에 올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의 성적을 냈다.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랑핑은 이탈리아 프로 리그(1999년~2005년)에 진출해 소속 클럽을 여러 차례 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터키 리그 텔레콤 앙카라를 이끌었다.

2002년 배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랑핑은 2005년 미국 대표 팀 지휘봉을 잡아 모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을 차지했다. 랑핑이 이끄는 미국이 중국을 세트스코어 3-2로 물리친 준결승전은 후진타오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에서만 2억5,000만 명이 중계방송을 봤다. 랑핑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2015년 여자 배구 월드컵 우승에 이어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중국을 정상으로 이끈 랑핑은 남녀를 통틀어 올림픽 배구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첫 번째 인물이 됐다.

지난 17일 한국과 중국 경기에서 버들가지 같은 부드러운 스파이크 동작과 정확한 ‘미팅’ 등 랑핑의 선수 시절 플레이와 김연경의 플레이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잘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 대표 선수들 기량이 조금만 더 수준이 높았으면 김연경과 한국 여자 배구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경기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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