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이성민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아내를 두고 수많은 여자를 만나며 자유로운 생황을 즐기고,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 앞에서 후회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철이 없다. 아직 철이 덜 든 '어른이' 같은, 악동 같은 느낌의 캐릭터를 이성민은 탁월하게 표현했다.

직접 연기를 했지만 이성민은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장난기 가득한, 행복함을 숨질수 없은 자연스러운 표정을 보고 스스로도 '참 철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화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인 '바람 바람 바람'은 '이병헌스러운' 작품이다. 이른바 '말맛' 코미디물로, 이병헌 감독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도, 영화를 즐길 수도 없는 작품이다. 이성민을 비롯한 신하균, 송지효, 이엘까지 모두 첫 호흡이었다. 

개봉 전 그를 만나 당황했던 첫 촬영 현장 이야기와 석근을 만들어간 과정, '바람 바람 바람'이 갖는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만큼이나 유쾌한 현장이었고, 그 즐거움 만큼 영화 속 좋은 호흡을 만들 수 있었다고.

◆ 이하 이성민과 나눈 일문일답.

Q. 석근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원래는 외모나 스타일을 조금 더 카사노바 처럼 치장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병헌 감독이 약간 댄디하게, 네추럴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하더라. 감독님의 생각이 맞았다. 영화로 보니 귀엽더라.

Q. 맞다. 스크린으로 보니 이렇게 귀여운 배우였나 싶었다.

내가 보고도 빵 터진 장면이 있는데, 제니(이엘)와 석근이 술을 담그고 있는 장면이 있다. 장문 너머로 보이는데, 내가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더라. 그 모습을 내가 보니 웃겼다. 참 철 없다 싶었다.

Q. 석근을 연기하면서 걱정은 없었나.

캐릭터를 만나면 늘 걱정을 한다. 시나리오에 설명이 잘 돼 있었다. 배우는 좋은 캐릭터를 선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작품에서 캐릭터가 좋아서 보면, 배우의 몫도 있겠지만, 시나리오 안에서 만들어져 있다. 배우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다. 석근은 매력적이었다. 워낙 캐릭터가 좋아서 구현하는데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Q. 이병헌 감독이 '이성민이 석근 그 자체였다'는 말을 했다.

초반의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후반 이미지 때문에 날 선택한 것 같다. 초반 카사노바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말 하는 것이다. 하하.

Q. 이 작품을 선택한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병헌 감독의 재기발랄함에 대한 기대였다.

코미디를 좋아한다. 함께 일 하기로 한 뒤 '스물'을 봤다. B급 같은 느낌이 좋았다. 그의 엉뚱함이 굉장한 매력이다. 연기를 해도 좋을 정도로, 배우 이상의 다른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는 감독이다. 그래서 믿고 간 부분이 많다.

Q. 촬영 초반에는 많이 당황했다고.

상식적이지 않으니까. 인물들의 움직임이 일반적이지 않다. 신하균의 행동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부분이다. 나도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로 보니 괜찮더라. 이병헌 감독만의 방식이다. 뒤로 가면서 적응이 됐지만, 초반에는 당황했다. 송지효가 가장 늦게 합류 했는데, 역시 당황하더라. 우리도 처음에는 그랬다고 이야기 해 줬다.

Q. 석근은 상당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어떤 부분을 신경 썼는가.

매력보다는 아내가 죽은 뒤 감정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간 후 부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석근이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래야 관객들이 용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초반 난봉꾼 같은 모습은 지나가는 재미이고, 뒷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Q. 석근이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무엇인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이다. 늘 인생이 있을 때 못하고, 후에 후회하는 것이지만, 석근이 진심으로 아내에게 미안해 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 이것이 관객의 공감과 동정을 받으며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석근의 매력인 것 같다.

Q. 이 영화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신하균이라는 좋은 친구를 얻었다. 그 전에 작품을 같이 했지만 대화를 많이 못나눴다. 하균이는 말을 시켜야 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화가 많지 않았다. 이번 작품은 섬(제주도)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같이 대화하고 밥 먹고 하면서 서로 알아갔다. '쟤는 말을 시켜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영화 끝나고도 자주 만난다.

Q. 신하균과 배우 대 배우로 붙는 호흡은 어땠나.

좋았다. 나는 신하균의 연기나 에너지를 존중한다. 예전부터 신하균의 연기를 봐 왔다. 호흡이나 그런 것은 문제가 없었다. 특별히 조율하지 않아도, 서로 포지션을 잘 찾아 간다. 한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하지 않는다.

Q. 이병헌 감독은 '말맛 코미디'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는가.

'엄마 얼굴 기억나'라는 대사다. NG가 정말 많이 나기도 했다. 대본에 그대로 적혀 있다. 대본을 봤을 때도 재미 있었는데, 영화로도 재미 있더라. 영화 속에 이병헌 감독의 엉뚱함이 들어 있다. '말맛'이라는 것이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다. 신하균이 첫사랑 이야기 하는 것도 웃겼다. 그 엉뚱함을 신하균이 더 엉뚱하게 연기 했다. 내가 웃음이 터져서 NG를 많이 냈다.

Q. 청소년관람불가인데도 노출이 많지 않다. 의도적으로 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노출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조심하는구나 싶었는데, 영화로 보니 좋더라. 이병헌 감독이 일부러 조절을 한 것 같다.

Q. 불륜, 바람이라는 소재로 인해 위험한 부분이 있다. 오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우리 영화는 코미디다.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든지, 어두분 부분, 불합리한 부분을 끄집어 내서 같이 드러내고, 같이 웃고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지점에서 '바람 바람 바람'을 보면 충분히 웃고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불륜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