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뛰어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캐릭터도,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도 제 옷을 입은 듯 뛰어나게 소화한다. 그에게 “이번 작품은 어떻게 연기를 했냐”고 묻는다거나 “이번에 연기가 참 좋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느껴질 정도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이병헌이 보여준 연기도 마찬가지다. 힘을 빼고 그저 일상을 살아가듯, 어딘가에 이병헌의 얼굴로 지내는 조하(극중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가 있는 듯 자연스러웠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이 돼 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 적어도 몇 달은 그 인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지만 살아왔다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니 말이다.

조하의 경우 외로운 정서가 깔린 인물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지만, 조하의 경우 모성의 부재 혹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로 인한 상실에서 비롯된 외로움이다. 외로운 감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외로우면서 그립고, 그 그리움은 원망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감정에서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은 아니었다.

“디테일을 연구하면 중심이 사라진다. 반면 캐릭터에 집중하면 디테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서 있으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한 캐릭터, 그가 처한 상황에 빠져들면 말투나 표정 등 디테일이 나온다. 시간이 흐르면 감독보다 배우가 그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 상황에 빠져서 나온 신의 한 예가 바로 춤을 추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조하와 그의 엄마 인숙이 함께 춤을 추는 신이 있다. 근본적인 원망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어색한 기운을 지운 상황에서 조하와 인숙은 술을 한잔씩 나눠 마신다. 이후 인숙이 춤을 권하고, 조하는 머뭇거리지만 화끈한 브레이크 댄스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대본에 춤을 추는 신이 있었다. 브레이크 댄스더라. 선을 넘는 코미디가 아닌가 싶었다. 그 신을 찍었을 때는 촬영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서 조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캐릭터에 빠지기 전에는 오바인가 싶지만, 시간이 지나고 캐릭터의 선을 타기 시작하면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도중 이병헌은 “생각해 보면” “생각해보니”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예를 들어 “조하의 직업은 왜 복서였는지 최성현 감독에게 물어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은”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여러 스포츠 중에 왜 하필 복서였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 했던 것은 복싱이 모든 운동 중 가장 고독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복싱의 기분 자세가 두 주먹을 올린 채 막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 고독한 종목을 선택한 것도 조하의 쓸쓸함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하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답이었다. 디테일을 잡았을 때 나오는 답변이 아니었다. 이병헌의 말처럼 조하의 중심에 서 있으니 그 무엇도 막힐 것이 없었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조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조하의 중심에서 이병헌은 곧 조하가 된 이유다.

조하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표현하는 장면은 또 있었다. 영화 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먹는 신이다. 밥을 먹고 라면을 먹고 햄버거를 먹고. 틈이 나면 빵을 먹기도 했다. “상실감의 표현이냐”는 물음에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늘 배고픈 사람이다”고 했다. 먹을 기회가 생기면 일단 먹어 저장을 하는 것이다. “먹을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은 맞다”고 했다.

이병헌이 한물간 전직 복서 역을 맡은 이유로 ‘그것만이 내 세상’은 조하가 복서로 성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중심은 서번트증후군 진태다. 박정민이 맡은 진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양보를 많이 한 느낌이 들었다”는 말에 “양보를 하고 욕심을 내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영화에는 각자 해야 할 롤이 있고, 최선을 다 해 내야 한다. 누군가가 양보를 하거나, 또 욕심을 내면 밸런스가 깨진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관객들이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받는 것은 진태였다. 그것을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정말 잘 해냈다. 기대 이상이었다.”

작은 영화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이것만이 내 세상’은 이병헌이 지금까지 출연했던, 흥행에 성공하고 많이 알려진 작품과 비교해서 소소한 작품이다. 다루는 내용과 스케일 등 모든 면에서 일상적인 작품이었다. 이런 말에 이병헌은 “내가 큰 영화에만 출연했다면 ‘싱글라이더’에는 왜 출연 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제공|CJ 엔터테인먼트

결국은 정서였다. 시나리오를 읽은 뒤 느껴지는 정서가 좋았다. 이병헌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JK스러운 작품’이라는 말을 알아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는 선을 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 있었다.

“신파나 뻔한 이야기가 JK 스타일의 특징이라고 하더라. 아주 주관적으로 내가 판단했을 때 선을 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웃기려는 포인트나 눈물을 쥐어 짜는 포인트 등 선을 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판단에는 그 선을 넘지 않는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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