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출발 시점에서 적당한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2018년을 시작하기에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딱 적당한 작품이다. 적당한 희망과 좌절, 그리고 앞으로 나갈 힘을 주기에 말이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은 살아온 곳도, 잘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도 서로 다른 두 형제 조하(이병헌)와 진태(박정민)이 난생 처음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때는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오갈 데 없어진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는 17년만에 헤어진 엄마 인숙(윤여정)을 우연히 만난다. 일단 급한 대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인숙을 따라 나서고 그곳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지닌 동생 진태를 만난다.

라면 끓이기와 게임을 잘 하는 진태는 피아노 치기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서번트증후군이다. 피아노 레슨은 고사하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지만 한번 들은 피아노 연주곡을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고스란히 옮길 줄 안다. 그 세상 안에서 진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영화는 조하와 진태의 대조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정의 기복을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운동인 복싱 선수로 살아온 조하와,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진태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합을 맞춰 나간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복서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한물간 복서가 가족을 만나 다시 성공하는 이야기 정도로 말이다. 조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외롭다. 그의 고독은 집을 나간 엄마 인숙을 만난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는 근본적인 것이다. 그가 다시 일어서고 과거의 환희를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진태로 인해 삶의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 철저하게 진태의 시선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이유에서다.

영화 속 감동 코드는 조하와 인숙의 만남이나, 조하와 진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피아노 앞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을 느끼는 진태의 표정과 귀를 즐겁게 하는 피아노 선율이다. 진태의 피아노 연주에 따라 미소를 짓기도 하고,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이병헌이 오랜만에 보여주는 편안한 연기도 ‘그것만이 내 세상’의 포인트다. 현실에 붙어 있는, 가공된 강한 캐릭터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최근 이병헌이 보여준 연기가 익숙한 세대라면 신선한 즐거움일 것이고, 과거 이병헌의 연기를 본 이들이라면 뜻밖의 반가움일 것이다.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 박정민의 연기도 일품이다. 서번트증후군을 표현함에 있어 부담과 걱정이 많았겠지만, 진태를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들을 외부에서 관찰하기 보다는 일부가 돼 어울렸고, 진심으로 교감하며 느낀 것을 표현했다. 피아노 역시 대역이나 CG(컴퓨커 그래픽)로 맞추지 않고 직접 소화해 영화의 몰입을 돕는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 제공|CJ 엔터테인먼트

‘그것만이 내 세상’이 ‘JK필름스러운’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 JK스러움은 긍정적인 의미로 봐도 좋다.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우연이 생기고, 앞을 예측할 수 있는 복선이 있다.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강한 감동보다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따스함이 담겨있다.

결말 역시 현실적이다. 전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형제가 만나 서로를 100% 이해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는 식의 동화같은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힘을 내라고 관객을 안아준다. 진태의 손을 잡은 조하의 손에 들어간 힘 만큼 앞으로 나갈 용기를 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걸음씩 걸어 나간다. 비록 그 앞날이 희망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닐지라도. 오는 17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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