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스타=유은영 기자] 노래의 가사는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가사 뜯기’는 하나의 노래를 선정,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해석하거나 특징을 탐구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 기리보이 '성인식' 커버. 제공|린치핀뮤직

◆ 기리보이의 첫 번째 ‘식’

래퍼 기리보이의 ‘식’ 시리즈, 그 첫 번째는 지난 2015년 3월 발표한 정규 앨범 ‘성인식’이다. ‘성인식’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앨범 소개와 마찬가지로, 미완성의 한 남자가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담겼다. 타이틀곡인 ‘왕복 30분’을 비롯해 ‘성인’ ‘잘 지내냐’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지켜줄게’ 등은 모두 어떤 ‘결과물’을 손에 넣지 못한 채 방황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우리관계는 어설퍼 닿을 듯 말 듯 썸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왕복 30분)과 같이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방황하거나 ‘너에게 말한 바람들을 다 이루고 나서야 내팽개친 순수함을 난 다시 주워 담’으며 ‘그냥 생각이 났다’(성인)고 말하는 등 어떤 관계 속에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를 지속한다. ‘그녀’를 지켜줄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키겠다고 읊조리듯 다짐하는 ‘지켜줄게’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휩싸여 있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도 마찬가지다. 닿을 듯 말 듯한 목표물에 손을 뻗고 있지만 그것을 가진 상태는 아니다.

이는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로 이어진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그냥 생각이 났다’고 말하는 ‘성인’은 물론, 과거 한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에게 지금의 ‘나’를 말하는 ‘잘 지내냐’가 그렇다. ‘성인’과 ‘잘 지내냐’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되는 시점은 과거다. 과거의 ‘나’와 ‘너’를 지금의 ‘나’와 ‘너’로 비교한다. 불완전하기에 확실한 미래, 또는 명확한 관계를 성립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이를 향한 관문인 ‘성인식’이다.

▲ 기리보이 '졸업식' 커버. 제공|린치핀뮤직

◆ 기리보이의 두 번째 ‘식’

기리보이가 지난 20일 발표한 ‘식’ 시리즈의 두 번째 앨범은 ‘졸업식’이다. 졸업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하다. 수련 과정을 완료해 어떤 기관을 떠나거나, 기술이나 학문 따위에 통달해 익숙해지는 것. 다만 기리보이가 말하고자 한 ‘졸업’은 그게 아닐 거다. 

가장 명확하게 말한 졸업은 세상과 작별이다. ‘졸업식’의 타이틀곡인 ‘졸업’에서 기리보이는 ‘우린 존재함에 슬퍼’하다가 결국 ‘악몽 같던 날들은 이제 뒤로’하는 선택을 한다. ‘졸업’ 속 화자에게 ‘살아있단 것은 너무 아픈 상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등지는 ‘졸업을 택’했다. 

다른 곡들에서 말하는 졸업은 무엇으로부터의 졸업인지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성인식을 지나고, 어떤 무언가로부터 졸업을 한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것들과 똑바로 마주하고 인지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마음의 형태를 믿지 못해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어쩌면 기괴하기도 한 ‘인체의신비’나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을 표현한 ‘입씨름’, 히키코모리 삶을 표현한 ‘히키코모리’ 등이 그렇다. 불완전해서 명확하지 않은 관계 그리고 상황을 지속했던 지난 ‘성인식’과 다르다.

‘믿지 못해서 눈으로 확인하고자 실험하고 해부’하면서도 ‘난 필요 없어 아무것도’(인체의신비)라고 말하는 게 더욱 외롭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인식’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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