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제공|(주)쇼박스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첫 장면에 등장하는 설경구는 낯설다. 50대 후반과 60대 초반 어딘가에 존재하는 설경구의 얼굴은 바짝 말라 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에 흐릿한 눈동자, 떨리는 안면까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낯선 설경구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살인을 멈춘 연쇄 살인범 병수가 또 다른 살인범 태주를 만나 살인 본능이 되살아 난다는 설정이다. 설경구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범 병수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속 병수는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달랐다. “소설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원신연 감독의 요청이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읽은 후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읽고야 말았다. 원작을 단숨에 읽은 후 알게 됐다. 병수는 “책과 비슷한 듯 다른 캐릭터”였다.

“소설을 그대로 만든다면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았다. 각색을 했더라. 병수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 같고, 병수에게 온기를 줬다. 소설에서는 사이코패스 같고 혼자 있는 인물이었다. 영화에서도 일반적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주변인과 어울리기도 한다.”

누가 봐도 쉬운 인물은 아니었다. 설경구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인물이었고, 연쇄 살인범, 알츠하이머 등 쉬운 설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주변에 참고할 상황 조차 없었다. 연쇄 살인범과 알츠하이머 환자. 설경구는 어느 것을 먼저 잡아 갔을까.

“살인이 아닌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인데, 기억을 잃었을 때 연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 알츠하이머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 부분의 부담은 덜었다. 연쇄 살인범도 소설과 같았다면 막연했겠지만, 영화화 되면서 소설보다는 인간적으로 변했다. 살인에 정당성이 있겠냐만은, 병수는 자신만의 정당성을 만들고, 은희(김설현)와 함께 하는 부분 등이 편하게 만들어줬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제공|(주)쇼박스

앞서 언급 했듯이 영화의 첫 장면은 상당히 인상 깊다. 그만큼 강렬했다. 설경구의 늙어 있는 비주얼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배경부터 모든 것이 강렬하다. 관객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올 것인지, 밖에서 관찰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그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영화가 큰일 날 것 같았다. 엄청 신경을 썼고, 마지막 날 촬영을 했다. 그때 정말 살을 바짝 빼려고 노력했다. 몇 일 전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의 익숙한 모습도 아닌데, 그 모습 때문에 몰입이나 믿음이 깨지면 안 되는 일이지 않는가.”

설경구의 달라진 외모는 특수분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나이보다 많은 병수를 표현하기 위해 특수분장이 아닌 스스로 늙는 방법을 택했다. “이 영화와 특수분장이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원신연 감독 역시 동의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 근육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랬다. 자신의 표정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 연기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첫 인상이 건조해야 했다. 소설과는 다른 캐릭터지만 그 안의 첫 느낌은 가져오고 싶었다. 처음으로 한 일이 얼굴에 기름기를 빼는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한번 늙어 볼게요’라고 했다.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촬영 감독님이 ‘늙었다’고 하더라. 그 말이 정말 반가웠다.”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 유독 어려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정말 오랜만이었다”고 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스스로 돌아보니 수 년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쉽게 접근했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아서 긴장감이 없었다. ‘(연기를) 그만 둬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때 ‘살인자의 기억법’이 들어왔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연기에 있어서 고민을 해야 하는 캐릭터라 고마운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병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살까에 대해 고민했다. 좋은 타이밍에 들어온 작품이었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제공|(주)쇼박스

여전히 새로움을 갈망했다. 50대에 접어 들면서 드는 생각은 “언제나 새롭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남기고 싶은 소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좋았다. 이번 작품에서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창피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설경구에게 가장 끔찍한 순간은 자신의 연기를 보며 창피함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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