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종석은 북에서 온 연쇄살인마 김광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느와르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던 이종석은 ‘브이아이피’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그는 직접 박훈정 감독을 찾아가 출연 의사를 밝혔다. 쉽게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캐릭터였지만 도전 의식이 생겼다. 이종석은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시나리오 보고 나의 장점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종석은 “저는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모니터를 한다. 그걸 보면서 반성하고 자책하고 부족한 걸 보완하는 스타일인데, 감독님이 캠코더를 빼앗았다”며 “계속 제대로 모니터를 못해서 제 연기를 보기 전까지 두려움에 떨었고 겁을 먹었다. 혹여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영화 ‘관상’을 찍으면서 스스로가 선배들의 연기 흐름을 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반성하고 자책했다.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렇기에 이종석은 더욱 철저하게 박훈정 감독의 디렉션에 의지했다. 촬영을 해나가면 신마다 가장 어울리는 미소를 찾아냈다. 이종석은 “어떤 면에서는 더 편하기도 했다. 제가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 걸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박훈정 감독님의 ‘빅픽처’인가 싶기도 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종석은 “정체기라고 해야 되나. 연기를 잘하고 싶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라며 “모니터를 하면서 스스로 멀리 떨어져서 보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기가 멈춘 게 보이더라. 이 지문은 이 정도로 연기하면 되겠다 싶기도 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기술적으로 쌓인 것들이 있지 않나.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싶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브이아이피’가 새로웠고, 선배들에게 많이 여쭤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었고, 나도 아직 새로운 것들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 중이라는 이종석. 그는 남성적인 캐릭터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내가 가진 장점과 무기가 뭔지 안다”고 밝힌 이종석은 “그럼에도 부러울 때가 있다. 제가 김명민 선배 역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아무리 인상을 쓰고 담배를 피워도 위압감이 다를 거다. 느낌이 잘 안 그려진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 그런 분위기가 나지도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저를 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저의 비전은 제가 가진 장점을 소비하고 소모해서 소멸할 거예요.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찾아내지 못하면 그대로 사라져버리면 돼요. 다작을 하다보면 사람들도 어느 순간 지겨워지겠죠. 배우로 더 나아가려면 새로운 걸 찾아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절박함에서 뭔가 엄청난 게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