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민이 '브이아이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스포티비스타=양소영 기자]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연기에 만족해본 적이 없다는 배우 김명민. 그는 연기가 끝없는 숙제와도 같다고 했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마저 즐겁다는 김명민은 천생 배우였다.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김명민은 강력계 형사 채이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명민은 ‘브이아이피’에 대해 “보통 느와르는 통쾌하고 남자들의 의리와 브로맨스가 돋보이는 영화들이 많다. ‘브이아이피’는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기획 귀순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밀고 나간 영화”라고 말했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형사 역을 한 김명민에게 ‘브이아이피’의 채이도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김명민이 이 작품을 선택한 건 박훈정 감독 때문이었다. 몇 번의 기회가 무산된 후 타이밍이 맞아 박훈정 감독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는 김명민. 그가 채이도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영화 안에서 모두 각자의 몫을 다하는 것이었다. 

김명민은 “(우리 영화는) 각자 할 몫을 하고 빠진다.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캐릭터물은 아니다. 사건 중심이고 밸런스도 거기에 맞춰 편집을 했다. 배우로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했다면, 이런 조합이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저 역시 처음부터 정확하게 인지하고 갔다. 내가 할 몫은 여기까지고, 다음은 상대 배우에게 맡겼다. 히어로물처럼 끈끈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 아니지 않나. 서로 도와주고 그런 게 아니라 과감하게 ‘이 장면은 내 거고, 이 신은 네 것’이라며 서로를 믿고 했다”고 설명했다.

‘브이아이피’의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한 김명민은 “스태프들하고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제가 현장에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차이가 있다”며 “극중에서도 여러 사람과 부딪친다. 아무래도 다른 배우들이 더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 톤 자체가 즐겁지 않고 무미건조하지 않나. 저도  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김명민이 등산 예찬론을 펼쳤다.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데뷔 22년차 배우 김명민에게는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기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김명민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연기본좌’는 송강호 이병헌 황정민 김윤석 한석규 같은 분에게 어울린다. 그 분들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있다. 대한민국 모두가 공감하는 사람들이지 않나”고 말했다.

이어 “전 아직도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면 어색하다. 스스로 잘했다거나 멋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TV에서 내 모습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 해야 되지 않겠나. 다 갖췄고 스스로도 인정하면 그건 신 아닌가. 그러면 무조건 떠난다”며 “아직도 할 것이 있다. 연기는 해도 해도 끝없는 숙제 같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하는 것이 힘들지만 보람 있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즐기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김명민은 무명 시절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이름부터 함께한 배우, 당시 상황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에겐 연기를 그만두고 이민을 가려고 했던 순간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다시 연기의 손을 잡았던 순간도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김명민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참 드라마틱하다”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작품이 ‘불멸의 이순신’이라고 한다면, 이순신을 하기까지 과정이 드라마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게 인생인가 싶다”고 말했다.

▲ 김명민이 '연기 본좌'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인생은 평탄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는 김명민은 “옆을 보지 않고 앞을 보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운동도, 인생도, 연기도 자신의 옆을 지나 앞서 가는 사람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은 스스로 인생을 낭비하고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숱한 일을 겪으며 “크게 기뻐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낙담하지 않고, 중용의 덕을 갖추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는 그는 “남에게 받는 것보다 스스로를 찌르는 게 더 크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죽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럴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저는 산을 간다. 등산에서 얻는 게 많다. 시간 날 때마다 산을 간다”며 ‘등산 예찬론’을 펼쳤다.

“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요? 예전에는 일부러 시간을 뒀어요. 끝나고 쉬는 시간도 갖고 준비하는 시간도 따로 뒀어요.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을 놓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이제는 쉬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저는 대중이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요. 스스로 배우로서 죽었다고 생각할 때 연기도 그만둘 거예요. 매너리즘에 빠지고 더 이상 뭔가를 창조하지 못하면 떠나야죠. 지금까지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어요. 아직은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지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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