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 이은 이진현 오스트리아행, 한국 유망주 유럽행 배경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이진현(20)의 오스트리아비엔나 이적이 공식 발표됐다. 지난 5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을 통해 또 한 명의 유럽파가 배출됐다.
오스트리아리그의 주요 스카우트와 에이전트는 지난 4~5월 한국 유망주 발굴을 위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여러 유럽 스카우트 중 오스트리아에서 온 스카우트들은 파주NFC를 찾아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18 대표팀 연습 경기까지 참관하는 열의를 보였다.
오스트리아리그가 한국인 유망주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성공 사례 때문이다. 레드불 잘츠부르크에 입단한 황희찬이 길을 열었다. 그에 앞서 손흥민이 유스 시절 함부르크에 입단한 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해 이정표를 세웠다. 황희찬은 손흥민의 성공이 특수 사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오스트리아에는 황희찬 외에 연령별 대표 출신 수비수 김재우가 하부리그의 SV호른 소속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측 관계자들은 이진현 외에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한 몇몇 선수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권창훈 영입을 추진했던 팀도 오스트리아 리그 소속이다.
#오스트리아가 한국 유망주를 원하는 이유
오스티리아리그는 유럽의 대표적인 루키리그다. 재정 규모가 크지 않다. 유망주를 육성, 발굴해 인접한 ‘빅리그’ 독일 분데스리가로 이적시켜 이윤을 남기는 것이 운영 방향이다. 한국 유망주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래서다. 이미 국가대표나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의 경우 이적료가 높다. 유망주 단계의 선수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유럽 축구 이적 시장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출전 횟수 보장 등을 계약서에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을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일반적으로 출전 보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오스트리아는 이 점을 무기로 유망주들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에이전트는 “유럽 스카우트도 이제 한국 유망주를 선별하는 조건이 꽤 구체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빠르다거나, 킥이 좋거나, 단순한 조건을 두고 선수를 찾았다. 이제는 유럽 무대 적응력, 빅리그 진출시 성공 가능성 등 자질과 성향을 면밀히 따져 선수를 찾는다. 2차 판매로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유망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유럽의 루키리그는 오스트리아 만이 아니다. 황희찬이 거둔 성공은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 최근 빅리그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동유럽 지역 팀들에게도 자극이 됐다. 최근 이 지역 리그 팀들이 한국 유망주 정보 수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유럽 꿈꾸는 한국 유망주, 진출인가 탈출인가
최근 한국의 대표적 유망주들 역시 실전 경기 출전을 통한 경기력 향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당장 빅리그로 진출하기보다 중위 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 중간 과정으로 K리그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망주 유럽 러시’의 불편한 이면이다. 어쩌면 유망주의 유럽 러시는 ‘진출’이 아니라 ‘탈출’이 될 수 있다.
20세 전후의 한국 유망주들이 K리그 입성보다 유럽행을 택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출전 기회와 계약 조건이다. K리그의 신인 선수 최고액 조건은 계약금 1억 5,000만원에 연봉 3,600만 만원이다. 이 경우 5년 계약을 체결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유망주라도 첫해 연봉 3,600만원 조건에 5년간 묶이게 된다. 프로 입단 후 주전으로 자리잡고 성공하더라도 유럽 진출 및 이적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계약 이후 출전 기회를 보장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을 치르며 가장 아쉬움을 표한 부분은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다. 프로든 대학이든 주전으로 꾸준히 기회를 받는 선수가 드물었다. 최고 수준의 경기를 경험하며 한창 성장할 나이에 벤치를 달구거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2군 경기를 소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성장이 둔화된다.
갓 성인 무대에 등극한 나이에 대학 무대에서 뛰거나, 프로에 직행하더라도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1~2년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U리그의 경우 학점 미달시 대회 출전 자격을 주지 않게 되면서 또다른 문제가 야기됐다.
결정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경우 만 27세가 되면 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대 초반 2년의 시기에 좋은 경험을 쌓지 못하면, 최전성기로 보낼 시간이 5년뿐인 것이다. 20대 초반의 2년 동안 경기력과 가치가 떨어진 상황 속에 5년간 도전해야 한다.
이전에는 K리그로 진출해도 중동과 중국 리그 진출을 통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과 중동이 아시아쿼터를 폐지하며 이 가능성이 차단됐다. K리그 진출로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일본 J리그의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또 다른 길이 열렸지만, J리그의 경우에도 한국의 유망주 선수를 미리 영입하는 것에 이미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재정적으로 위축된 K리그, 신인에게 기회가 제한적인 K리그는 유망주들에게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23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이 존재하지만, 한 자리 뿐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 19세, 만 20세 선수들이 대학 무대를 거쳐 합류한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어린 선수들에게 믿고 기회를 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뚫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선수는 특수 케이스다.
#K리그 산하 유스팀, 더 이상 꿈의 무대 아니다
K리그가 의무적으로 산하 유스팀을 구성하도록 하면서 프로 산하 팀에 최고의 유망주들이 몰렸다. 학원 축구는 위기를 이야기했다. 프로 산하 팀은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며, 프로 진출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엘리트 코스였다.
하지만 현 시점의 최고 유망주들은 프로 산하 팀 입성을 꺼리는 분위기가 됐다. 프로 산하 팀에 들어가 우선 지명 선수가 될 경우 정해진 조건으로 무조건 계약을 맺어야 하고, 그간의 육성을 댓가로 일부 경우 계약금 없이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금전적으로나 출전 기회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맺게 된다.
최근 연령별 최고 유망주로 평가되는 선수들이 만 18세가 되어 유럽 유스팀으로 이적하거나, 대학 무대를 거쳐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현상은 앞으로 일반적인 경향이 될 공산이 크다.
이진현의 경우 성균관대 소속으로 오스트리아비엔나로 이적하면서 6개월 계약을 맺고, 다시 우선지명팀인 포항과 계약한 뒤 6개월 임대 계약을 맺은 뒤 완전 이적하는 형식을 취했다. 포항이 어느 정도 이적료를 확보하는 방식의 조율이 이뤄진 계약이다.
본래 이진현은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대회 종료 직후 시점에 오스트리아비엔나로부터 확실한 제안을 받았다. 실제 계약이 성사 단계까지 갔으나 포항스틸러스 우선 지명 문제를 풀지 못해 협상이 지연됐다. 6개월 이적+6개월 임대 후 이적료 지급 방식을 통해 해법을 도출했다.
이진현은 평가전 당시부터 빛나는 플레이를 보여 시선을 사로 잡았다. 측면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데다, 유럽에서고 희소가치가 있는 왼발 잡이라는 점에서 오스트리아비엔나 측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유럽 이적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특정 유형의 선수들이 유럽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유럽 스카우트들이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 대건고 정우영도 바이에른뮌헨 유스팀과 계약하면서 인천유나이티드에 이적료를 남겼으나 훈련 보상금과 연대기여금이 포함된 액수로, 특급 유망주의 장래성에 비하면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
두 선수 모두 계약서상 이적료 없이 떠날 수 있지만, 친정팀과 불편한 상황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 조율했다. 현재 규정상으로는 K리그 구단이 유망주의 해외 리그 이적을 막을 방법은 없다. 유럽 구단과 선수 측이 어느 정도 이적료 수익을 안기고 가자는 도의적 측면과 관계적 측면을 감안했기에 가능한 거래였다. 유럽 구단 측이 해당 선수의 가치를 인정했고, 적극적으로 원했기에 양보했다. 이진현과 정우영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가 적절히 조율된, 비교적 원만한 계약이었다.
#유망주 유럽 러시, K리그 유스 시스템에 ‘치명타’
하지만, 결과적으로 K리그 구단 입장에선 유스 팀에서 키운 최고 수준를 1군 팀에서 단 한 시즌도 활용하지 못하고, 거액의 이적료 수익을 거두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에이전트는 “앞으로 이진현 이적과 같은 사례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 K리그 구단에 소속되어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연령별 대표 출신의 어린 선수들에게 해외 리그의 제안이 온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장기계약에 묶여있어 이동의 자유가 없다. 구단과 감독은 해당 유망주들을 1군 경기에 투입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팀에 가서 맹활약할 경우 쏟아질수 있는 비난, 기존 주력 선수 부상시 투입해야 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이적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을 목격한 유망주와 부모들은 K리그 구단 입단, 나아가 프로 산하 고교팀 입단을 망설이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K리그는 언제나 위기였다.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K리그에선 더 이상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재능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선수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제동을 걸 수도 없다. 유스팀 단계에서 유럽 이적, 우선 지명 선수의 유럽 이적 등을 제도적으로 제어할 경우 더 큰 반발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결국 미성년 선수의 프로 계약 및 경기 출전 불가, 신인 선수 연봉 상한액 등 기존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구단과 감독, 선수의 상생을 위한 K리그의 생태계를 바꿔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한국 유망주가 유럽 무대에서 성공시대를 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K리그가 활성화되지 못하면 한국축구의 생태계는 시간이 갈 수록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