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군함도'에 출연한 배우 이정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앙상하게 마른 어깨가 안쓰럽다. 얼굴에는 독기가 올라 있지만 그 누구보다 가냘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영화 ‘군함도’ 속 말년(이정현)은 그야말로 외유내강 형 인물이다.

이정현이 연기한 말년은 갖은 고초를 겪은 강인한 조선 여인이다. 수많은 사연을 품고 군함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고, 일본인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그는 군함도에 도착하자마자 유곽으로 보내지는 인물이다. 경성의 주먹 최칠성(소지섭)에게도 당차게 맞서고, 군함도라는 낯선 곳에 떨어진 이소희를 비롯한 연약한 조선인 소녀들에게 든든한 언니가 돼 준다.

누가 봐도 오말년은 어려운 캐릭터다. 위안부라는 아픈 상황에 처한 여인을 연기 해야 했고, 그로 인한 부담과 책임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이정현의 믿음은 바로 류승완 감독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지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 당당하게 맞서는 말년이 좋았다.

“말년은 조선 소녀들과 소희에게 엄마 같은 존재이면서 정신적 지주다. 조선인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일본인을 향해 총을 겨눈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는 내용까지 시나리오에 담겨 있었다. 한국과 일본, 편을 갈라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영화가 아니라서 좋았다. 류승완 감독님이 좋아하는, 강인한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류승완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을 결정했지만, 책임감과 부담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아직 생존해 계신 할머니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100%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하고 싶었다. 영화를 망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고 촬영에 임했고, 그래도 뭔가 하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 중 하나가 체중 감량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실제로 먹지 못하고 수난을 겪은 위안부 피해자가 있더라. 감독님의 요구는 없었지만, ‘약간의 노출이 있을 때 앙상한 갈비뼈가 보이면 어떨 것 같냐’고 내가 제안했다. 현장에서 조, 단역들 까지도 모두 다이어트를 했다. 식단 조절용 밥 차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 영화 '군함도' 이정현-소지섭 스틸.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외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내적인 감정까지 채워야 했다. 어떤 감정을 생각해도 위안부 피해자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어설프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은 류승완 감독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많은 도움을 줬다.

“말년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하는 신이 있다. 시나리오를 볼 때도 많이 울었고, 대본 리딩을 할 때 울먹이면서 대사를 했다. 어느 날 감독님이 문자로 영상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위안부 피해자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다. 정말 고통스럽고 잔인한 내용인데 남 이야기 하듯, 덤덤하게 하더라. 정말 슬프고 가슴에 와 닿았다.”

‘군함도’ 안에는 연민인지 애정인지 모를 오묘한 감정이 섞여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동질감에서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이는 상당히 모호하다. 말년과 칠성과 같은 관계다. 처음은 참으로 민망한 만남이었다. 말년의 당찬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정말 부담이 큰 장면이었다. 하하. 실제로도 첫 촬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내가 소지섭 씨를 부여 잡아야 했는데, 감독님이 ‘더 세게 잡아’라고 디렉팅을 줬다. 다행히 한번에 끝났다. 첫 촬영이 민망하면서도 인상 깊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군함도 유곽에서 힘든 생황을 이어가던 말년에게 칠성은 안식처였다. 조선인에게 속아 위안부 생활을 했지만, 덤덤하고 진심이 담긴 칠성의 마음이 따뜻하고 좋았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라고 했다.

“두 사람은 동지애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완벽히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마지막 감정은 관객의 생각에 맞긴 것 같다. 말년이 칠성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유곽에서 구해주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현장에서도 멋있다고 느꼈다.”

▲ 행복을 느끼는 현장에서 작업하고 싶은 바람을 전한 이정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이정현의 최근 작품을 살펴보면 유독 고되다. “유독 힘든 캐리터를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말에 “나도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뻔한 것 보다는 독특한 시나리오를 찾긴 한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의 독특한 내용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본다. 그 후 함께 일 할 제작진을 본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군함도’ 제작비 차이는 엄청나지만, 나의 행복지수는 같다. 즐겁게 촬영할 수 있는 현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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