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 정원 역을 맡은 배우 서예지. 제공|영화사 몸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자살을 결심한 두 남녀가 동반자살 사이트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혼자 죽을 용기가 없어서, 혹은 외롭게 죽고 싶지 않아서, 또는 여러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실패를 경험한 후 함께 죽는 방법을 택한 사람들일 것이다.

두 남녀 중 한 명은 삶의 의지를 잃은 수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이미 수차례의 자살 시도 경험을 했던, 상상도 하지 못할 아픔을 지닌 정원이다. 정원은 전신 마비를 겪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간다. 여기에 아버지는 밤마다 정원의 침실을 찾는다.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정원을 짓누르고,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만든다. 미안함과 죄책감은 오로지 정원의 몫이다. 밤마다 자신을 찾는 아버지, 누구의 책임인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의 손길에 몸이 반응한 것은 정원의 죄책감의 근원이었고, 작게 세어 나오는 신음 소리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런 말 못할 상처와 아픔을 지닌 정원은 덤덤하게 살아간다. 아니 죽어간다. 정원을 연기한 서예지(27)는 이런 정원에게 많이 끌렸다고 했다. 어둡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정원의 감정에 끌렸고,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게 다른 길이 있다로 흘러 들어왔다. 서예지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Q. 이 작품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완벽했고, 정원이라는 캐릭터에 끌렸다. 보통 캐릭터를 보면 밝고 어둡다는 것이 나오는데, 이 캐릭터는 감정 변화 없이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거기에 끌렸다. 덤덤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호기심도 생겼다.

▲ 배우 서예지가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 맡은 정원은 말 못할 아픔을 지닌 캐릭터다. 제공|영화사 몸

Q. 몰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일단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정원이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연기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안됐다. 정원이는 그대로 두고, 내가 정원이가 돼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촬영을 할 때마다 새로운 우울함이 다가왔다. 정원의 감정을 따라하기 보다는, 내가 함께 따라간다는 생각에 더 큰 우울이 다가왔다.

Q. 상황에 대한 몰입은 어떻게 했나.

죄책감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원이는 죄책감에 살고 있다. 일어날 때는 죄책감으로 일어나는 것 같았고, 죄책감에 피곤해서 잠이 든다. 정원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우울한 깊이를 느꼈다.

Q. 정원이가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은 무엇인가.

어머니가 전신 마비로 살아왔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죄책감보다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몸이 반응했다는 죄책감이다. 가장 아픈 장면이고, 정원이가 죽음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Q. 그런 감정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감독님을 많이 만났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감정의 깊이가 생겼다. 그리고 현장에서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정원이도 영화에서 엄마와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실제 선배님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감정을 잡기 위해 먼저 배우들과의 관계에 변화를 줬다.

Q. 대사가 별로 없어서 표현할 때 더 힘들기도 했겠다.

이걸 내레이션으로 풀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원이의 감정이 깨질 것 같았다. 정원이는 겉으로 동료들과 활발하게 춤을 추곤 하지만 내면은 다르다. 아버지에 대한 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대사로 표현 된다고 생각했다.

▲ 서예지는 "아무리 강인한 정원이라도 아픔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공|영화사 몸
Q. 정원은 강인한 사람인데 동반자살을 생각한다.

정원이도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죽으려고 연탄을 준비하는 등 계획을 세우지만, 적어도 자신과 모르는 사람과는 아픔을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동아줄을 잡는 마음일 것이다.

Q. 마지막에 수완이 나타나 목숨을 구해준다. 과연 고마웠을까.

고마웠을 것이다. 고마움이라는 1차원적인 마음 말고도, 나와 같은 사람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수완과 나누는 희망적인 대사다. 수완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같이 눈을 뜨고 만나서 안심이 된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답은 없었다. 그냥 결혼을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정원이는 그대로 삶을 살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삶을 살 것 같다. 자살을 반대로 하면 살자. 수완과의 일로 희망의 끈이 무엇인지 알게 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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